'오월동주'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

      2018.11.03 06:00   수정 : 2018.11.03 06:00기사원문


지난달 26일,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의 대통령궁에서는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옛 상관이었던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시리세나는 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라자팍사 정부의 보건 장관이었다.

같은날 라닐 위크레메싱게 스리랑카 총리는 자신이 아직 총리라며 시리세나의 해임 조치에 반발했다. 이로써 스리랑카에는 총리만 2명인 사상 초유의 정치적 혼란이 찾아왔다.


시리세나는 3년 전 라자팍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릴 당시만 해도 화합의 아이콘이었다. 1951년 9월 3일 스리랑카 서부 감파하에서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와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스리랑카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싱할리족 출신의 불교도다. 시리세나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배정된 경작지 때문에 중북부 폴론나루와로 이사했고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자랐다. 그는 학창시절 공산주의 심취해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으며 17살 되던 해, 스리랑카자유당(SLFP) 청년부에 들어갔다. 시리세나는 2년 뒤인 1971년 발생한 극좌무장단체 인민해방전선(JYP)의 봉기에 연루되어 15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는 1973년 스리랑카 중부 도시 캔디의 농업학교에서 농업 학위를 받았으며 1980년에는 당시 소련의 막심고리키 아카데미에서 정치 학위를 받기도 했다. 시리세나는 농업학교 졸업 직후 폴론나루와 협동조합에 취직했고 1976년에는 현지 공무원으로 일했다. 2년 뒤 SLFP의 정식 당원 자격을 얻어낸 그는 점차 당내 입지를 높여갔고 1989년 선거에서 폴론나루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시리세나는 눈에 띄는 대외 활동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당 내에서 부지런히 위로 올라갔다. 그는 2001년에 SLFP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라자팍사가 2005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자 농업 장관으로 기용됐다. 그는 2010년에 보건 장관까지 맡으면서 라자팍사 정부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라자팍사는 이후 8년간 대통령직을 연임하면서 북부 타밀 반군을 정복하고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가까운 방만한 경제 정책을 벌였다. 그는 특히 요직에 친인척을 배치해 족벌정치라는 비난을 샀고 타밀 반군 진압과정에서 4만명을 학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라자팍스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3연임을 달성하기 위해 2015년에 조기 대선을 선언했다. 시리세나는 이 과정에서 돌연 SLFP를 탈당해 제 1야당인 통일국민당(UNP)과 손잡고 라자팍사에게 맞섰다. 대선에서 승리한 시리세나는 UNP의 위크레메싱게에게 총리 자리를 주고 다시 SLFP의 당권을 인수했다. 시리세나는 취임에 앞서 "증오로는 증오를 극복할 수 없다"며 라자팍사 세력에게 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시리세나와 위크레메싱게의 연합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리세나는 취임 직후에 자신의 형제와 사위 등을 국영기업 및 요직에 앉혀 라자팍사와 똑같이 족벌정치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잘못 끼어들어 빚을 갚지 못해 함반토타 항구 운영권을 중국 기업에 넘겨줘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위크레메싱게는 시리세나 정권을 부패 정권으로 몰았다. 시리세나 역시 올해 초 위크레메싱게가 선임했던 전직 중앙은행장이 부패 혐의로 기소되자 이를 UNP의 부패 증거로 꼽았다. 한편 2015년 8월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복귀한 라자팍사는 이듬해 스리랑카 인민전선(SLPP)를 창당하고 올해 2월 지방성거에서 자신을 몰아냈던 SLFP와 UNP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3년간의 갈등 끝에 위크레메싱게를 해임한 시리세나는 지난달 28일 위크레메싱게 내각의 장관이 자신의 암살 계획에 연루됐다며 중앙은행장 부패 사건을 다시 언급했다. 그는 현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대안이 라자팍사라고 주장했다. 이에 위크레메싱게는 시리세나가 2015년에 대통령의 총리 해임권을 없애놓고 자신을 해임했다며 여전히 자신이 정당한 총리라고 항변했다.

시리세나가 과거 자신이 등을 돌렸던 라자팍사를 다시 불러들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해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라자팍사가 SLPP의 인기를 감안했을 때 2020년 총선에서 시리세나의 도움 없이도 총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각종 소송에 얽혀 궁지에 몰린 시리세나가 아직 권력이 있을때 라자팍사에게 점수를 따려 한다며 스리랑카 정치권의 궁색한 거래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과연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모양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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