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관부처도 없이 1년 이상 정책공백… 기업들 고사위기

      2018.12.10 17:44   수정 : 2018.12.10 17:44기사원문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정비를 마치고 기업들이 뛸 수 있는 운동장을 갖춘 반면 한국 정부는 1년이상의 정책 공백 속에서 기업들이 고사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9월 '모든 형태의 암호화폐공개(ICO) 전면금지'를 엄포한 후, 관련 제도 마련 등 후속조치에 손을 놓은 것이다. 소관 부처 하나 없이 방치된 암호화폐 시장은 거래소 벤처 인증 박탈을 비롯해 다단계 금융사기 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세계 1, 2위 거래소였던 빗썸과 업비트의 자리는 중국계 거래소가 꿰찼다. 한국이 글로벌 블록체인·암호화폐의 패권을 거머쥘 '골든타임'을 이미 놓쳤다는 걱정이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다.


■정부 이어 국회에서도 암호화폐 제도화 논의 미미

10일 국회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무조정실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블록체인·암호화폐 이슈 관련 논의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직무유기 상태인 행정부를 향해 암호화폐 제도권 편입을 외쳐왔던 국회(입법부)마저 추진 동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

당초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정무위원장을 필두로 암호화폐와 ICO 허용 여부를 다룰 소위 구성 등을 검토했지만 사실상 유야무야됐다는 전언이다. 정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논란을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가 포착한 현대중공업 불공정 하도급 거래 등 금융·비금융 전반에서 대형 이슈가 쏟아지고 있다"며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일부 상정돼 있지만 연내 논의가 이뤄지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과세 여부와 암호화폐 거래소 벤처 인증 갱신 등을 논의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 바른미래당 의원실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안이 처리된 이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지도부 교체와 정계 개편 등을 거쳐 빠르게 총선체제로 진입할 것"이라며 "암호화폐 관련 법안을 집중 논의하고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중한 접근' 포장하며 시간끌고 있는 정부

암호화폐 관련 정부부처 및 관계기관(가상통화 대책 태스크포스)인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법무부, 금융위·금감원,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국세청, 경찰청, 한국은행도 여전히 답보상태다. 소관부처가 명확치 않은 가운데 실명확인 가상계좌 발급과 ICO 가이드라인 정립에 대한 업계 요구는 1년 넘게 묵살되고 있다. 또한 직전 국무조정실장이었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인사청문회 답변서를 통해 "(ICO 허용 관련) 시장 상황, 국제논의 동향, 투자자 보호 문제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감독원의 실태조사 결과와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관계기관과 향후 ICO 대응 방향을 검토해 나가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이어갔다.

정부 관계자들은 국회 등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 나올때마다 '정부의 입장은 지난해 12월과 1월에 발표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1월 이후 어떤 논의를 하고 있는지 조차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나마 국정감사 등을 통해 정부가 암호화폐공개(ICO)에 대한 해외 사례를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 전부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안방도 중국계 거래소에 내줬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전 세계 1, 2위 수준의 거래량을 기록하던 빗썸과 업비트는 존재감이 사라졌다. 대신 중국계 거래소인 바이낸스, 오케이이엑스(OKEx), 후오비가 글로벌 톱3를 모두 차지했다. 해외 거래소들은 앞다퉈 한국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있는데 우리 거래소들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자금세탁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해외 송금줄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은행들이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해주지 않아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해외 진출로도 봉쇄되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이와 관련 복수의 블록체인 기술 업체 관계자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 자금을 세탁하거나 테러와 마약거래 등 범죄에 악용하더라도 결국 은행계좌를 통해 현금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입출금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솔루션들이 이미 있다"며 "ICO를 통해 자금을 모으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도 투자자에 대한 신원확인(KYC)을 반드시 거치는 추세여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감시목록 데이터베이스나 위협평판 데이터베이스 등을 적극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기술 문제 아닌 정책 의지 문제라는 지적도

결국 한국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의 후퇴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책 의지 부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업비트를 운영하고 있는 두나무 이석우 대표는 "거래소에 대한 설립 및 운영에 대한 기준이 없다 보니 충분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거래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해외처럼 거래소 설립과 운영에 대한 기준과 자격만 제시하더라도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ICO 프로젝트 고위 관계자도 "이전 정권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 대표가 대통령 해외 순방에 함께 따라갈 정도로 핀테크의 일환으로 여겨졌다"며 "비트코인 거래에서 원화 비중이 10% 이하로 줄었지만, 시큐리티 토큰 등 제도권 안에서 다뤄볼만한 디지털 자산을 중심으로 명확한 규제 정책만 뒷받침되면 글로벌 금융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여지가 아직 있다"고 강조했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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