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희망이 될수 있는건, 아픔 보듬어줄 누군가 있기에

      2018.12.11 17:53   수정 : 2018.12.12 10:11기사원문


비극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오손도손 행복해 보이는 가정에도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픔이 있고, 어제까지 서로 없으면 못살 것 같던 연인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의 존재를 외면하기도 한다.

세상의 수많은 비극을 밟고도 끊임없이 살아가는 우리. 때로는 커다란 수레바퀴 같은 사회의 비극이 개인의 비극과 교차하는 순간도 종종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그 위에 굳게 선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5년만에 선보이는 영화 '로마'를 통해 그 순간들을 잊지 않고 보듬어 품고 살아가자고 말하는 듯하다. 2013년 영화 '그래비티'로 아카데미상 감독상을 수상한 쿠아론 감독이 세계적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와 손잡고 만든 이 작품은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영화와 방송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작품이다. 여기에 지난 9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까지 더해졌다.

그간 해리 포터의 마법 세계와 무한한 공허함이 지배하는 우주, 후손을 낳을 수 없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등 큰 스케일의 낯선 세계로 관객들을 이끌었던 쿠아론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전작과 다른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들추어 보이고 있다.

자신이 자랐던 집과 동네에 대한 추억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쿠아론 감독의 소망은 15년만에 이루어졌다.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멕시코시티로 돌아간 쿠아론 감독은 해체 위기에 놓인 가정이 예기치 못한 곳에서 힘을 얻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영화의 주인공은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에 사는 가정부 '클레오'다. 가난한 마을에서 자란 클레오는 생계를 위해 친구 아델라와 함께 중산층 동네인 로마에 있는 소피아의 집에서 청소와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쉬는 날에는 아델라의 남자친구의 사촌인 페르민과 공원을 산책하며 연애를 즐기기도 하는 나쁘지 않은 삶이었지만 클레오가 임신한 뒤 페르민은 그녀를 외면한다.

아이 넷과 어머니, 남편과 함께 사는 소피아에게도 비극은 찾아온다. 의사인 남편이 외도를 하면서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오랫동안 해왔던 화학 선생님의 직업 대신 월급을 더 많이 주는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다. 다른 듯하나 비슷한 서로의 비극은 단단한 유대를 형성한다. 1970년대 초반 멕시코에 불어온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이를 감당하지 못했던 정부가 벌인 핏빛 학살이 자행되던 날 클레오는 유산을 하게 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소피아의 가족과 클레오는 소피아의 남편이 떠나면서 남겼던 자동차를 함께 타고 바다로 떠나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흑백의 화면에 담담하고 세밀하게 그려진 이 영화는 빼어난 수작이지만 12일부터 서울의 12개 극장을 비롯해 전국 40개 영화관에서만 상영된다. 14일부터는 넷플릭스를 통해서 볼 수 있다.
국내 멀티플렉스들이 넷플릭스가 영화 개봉 후 IPTV 등 부가 판권으로 넘어가는 기간인 '홀드백'을 사전 협의 없이 위반했다며 상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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