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의 일몰 바라보며… 잘가요, 2018년
2018.12.27 17:08
수정 : 2018.12.27 17:08기사원문
【 순천(전남)=조용철 기자】 2018년 한해가 저물고 2019년 새해가 시작된다. 성큼 다가온 겨울 추위 속에서 한해의 끝자락을 부여잡으니 텅 빈 들판처럼 마음이 허전하다. 한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전남 순천만에 갔다.
전라남도 동남 지역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는 순천시는 동쪽으로 반송산맥을 사이로 광양시, 서쪽은 모후산, 국기봉을 경계로 화순군과 보성군, 남쪽은 순천만을 끼고 여수시, 북쪽은 섬진강, 희아산을 경계로 구례군, 곡성군과 접한다. 지세는 소백산맥의 본줄기가 서부로 노령산맥으로 분기하고 남으로 곧게 뻗어 내려와 천황봉에 이어지며 능선이 순천시 남북으로, 지맥의 일부는 다시 동서로 달린다. 순천시는 전체 면적의 70%가 산지이며 전남에서 가장 산이 많은 지역이다. 직할하천인 섬진강이 구례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순천시의 북부를 흐르고, 보성강이 송광면을 관류해서 흐르다가 주암면 대광리에서 주암 다목적댐을 만들고 순천 경계를 벗어나 섬진강과 합류하면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2019년은 '순천 방문의 해'다. 순천시는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한 전남의 거점도시지만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제외하면 수도권 시민들에게 관광도시라는 이미지로 다가온 적은 별로 없다. 서울에서 지리적으로 워낙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한 이유다. 하지만 KTX 개통 이후 접근성도 크게 좋아졌다. 그래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전남 관광의 보고 순천의 관광자원들을 둘러봤다.
조계산 동쪽에 자리잡은 선암사는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태고종의 고찰이다. 백제 성왕 7년(529년)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을 짓고, 신라 경문왕 1년 도선국사가 지금의 선암사를 창건했다. 선암사는 조계산 반대편 서쪽 산중턱에 있는 송광사의 명성에 가려 덜 알려진 편이지만 오히려 그 덕에 고적한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산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겨울을 제외하면 1년 내내 절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울창한 숲이 지붕을 만들고, 벽을 만들어 그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선암사 주위로는 수령 수백년짜리 나무들이 울창한데 특히 가을 단풍은 현란하기 그지없다. 절로 가는 길에는 보물 400호로 등재된 아치형의 승선교가 먼저 객을 맞는데 계곡으로 내려가 다리 밑으로 보면 아치 아래로 보이는 강선루(降仙樓) 경치가 한폭의 그림 같다. 선암사는 사찰 전통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절의 하나로 보물 7점 외에도 장엄하고 화려한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로, 일주문 등 지방문화재 12점을 보듬고 있다.
선암사에서 둘러봐야 할 또 한 곳은 칠전선원이다.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으로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이다. 여기서 '칠전'이란 선암사에서 가장 윗쪽에 있는 일곱 채의 건물군을 가리킨다. 이밖에 선암사 뒤편의 야생 차밭에는 800년이 넘는 야생차 군락지가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연산 야생차 중 선암사 차를 최고로 칠 정도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차 맛을 보고 싶다면 매표소로 내려오는 길 중간 왼쪽에 위치한 순천전통차체험관에 들려볼 만하다. 순천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차 체험관에서는 다도와 차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5시까지 입장할 수 있는데 차와 다식을 포함한 값이 3000원으로 저렴하다.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제외)만 문을 열지 않는다.
순천만국가정원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지난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폐막 후 대회장을 개조, 조성한 순천만정원은 풍덕동·오천동 일대 부지 111만2000㎡(약 34만평)에 나무 505종 87만주와 꽃 120종 400만본을 심어 조성했다. 순천만정원과 순천문학관 구간(4.64㎞)을 오가는 소형 무인궤도 열차도 운행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는 게 좋다. 정원을 둘러본 후 열차를 타고 김승옥 문학관으로 이동해 하차한 뒤 순천만 초입 무진교까지 1.2㎞ 구간은 갈대열차로 갈아타고 가면 된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저녁시간이 되면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 중 하나가 용산 낙조전망대다. 아이들도 걸어서 오를 만큼 얕은 산 위에 있어 온가족이 함께 떠나는 일몰 여행지로 제격이다. 전망대로 가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입구에서 용산전망대까지는 데크길을 따라 40~50분 정도 걸으면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 서면 동그라미를 그린 것처럼 여러 개의 원을 이룬 갈대밭과 물길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와온 앞바다에 떠 있는 솔섬이 보인다. 전망대의 멋진 풍경 속에 머물며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닐 수 있다. 이곳에서는 순천만 너머로 해가 기울면 갯벌과 굽이굽이 휘어진 수로가 황금빛으로 물드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안개나루로 표현했던 대대포구에서 유람선을 타면 물 빠진 갯벌에서 거울의 파편처럼 빛나는 분홍빛 낙조가 황홀하다.
와온마을로 가면 동쪽에는 여수가 있고, 남서쪽으로 가면 고흥반도와 순천만이 접한다. 해질 무렵 와온마을 해변에 서면 서쪽으로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 이름도 아름다운 '꽃섬'이다. 뻘배를 타고 맛조개 등을 채취하는 아낙들을 만날 수 있는 와온마을도 낙조가 아름다운 곳 중 하나다. 해마다 이맘때면 섬 주위로 해가 떨어져 절경을 연출한다. 용산 낙조를 체험한 여행객들이라면 와온마을 꽃섬 일몰도 감상해볼 만하다. 이곳 사람들이 '똥섬'이라고 부르는 솔섬을 배경으로 저물어가는 낙조가 칠면초 군락지와 함께 비경을 연출한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