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겨울 밤길 걷는 폐지 노인...교통사고 잇따라

      2019.01.04 09:59   수정 : 2019.01.04 10:23기사원문

#. 기해년 새해가 밝기 하루 전날은 여느 때보다 어두웠다. 지난해 12월 31일 밤 8시 15분께 한 해가 끝날 무렵, 서울 용산구 원효로 2차로에 A할머니(79)가 나섰다. 할머니는 폐지가 가득 쌓인 리어카를 끌고 도로를 거슬러 걸었다.

역주행이었다. 마주오던 자동차를 미처 피하지 못한 할머니는 차에 치인 충격으로 숨졌다.


■지난해 사망자 서울서만 ‘6명’
겨울은 폐지수집 노인들에게 가장 위험한 계절이다. 낮이 짧고 밤이 길다보니 노인이 끄는 리어카는 도로 위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일선 지자체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안전 손수레 제공, 교통안전교육 등을 추진하지만 정책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4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에서 폐지수집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노인은 최근 3년간(2016∼2018년) 18명이다. 지난 한해만 노인 6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 4명, 2017년 8명이 숨졌다. 경찰은 사망사고만 집계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상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폐지수집 노인 사고는 12월부터 2월까지 동절기에 집중된다.

최근 3년간 서울서 벌어진 교통사망사고 중 40%가 겨울 발생했다. 주로 밤이나 새벽시간대였다. 지난해는 5건, 2017년 4건, 2016년 2건이다.

경찰 관계자는 “고령 노인들은 민첩성이 떨어지는데 리어카까지 끌다보니 사고에 쉽게 대처할 수 없다”며 “시력, 청력까지 떨어져 밤길 교통사고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폐지수집이 야간에 이뤄져 교통사고 위험이 더 크다고 말한다. 서울연구원 '폐지 수집 여성 노인의 일과 삶'(2015) 보고서를 쓴 소준철씨(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과정)는 “낮 시간은 용돈벌이, 취미로 폐지를 줍는 노인들로 경쟁이 치열해 밤을 택할 수 있다”며 “새벽에는 특히 많은 양의 폐지를 줍는 분들이 눈에 띈다”고 전했다.

■교통안전교육 수료, 노인 절반만
서울시는 지난해 ‘폐지 수집 어르신 지원 종합대책’을 내놨다.

야광조끼, 등 안전용품을 지원했다. 교통안전교육도 실시했다. 다만, 서울시 전수조사과정에서 파악된 2425명 폐지수집 노인 중 지난해 교육수료자는 1267명으로 절반(52%)에 그쳤다. 이 마저도 정부에 파악되지 않은 채 단기적으로 폐지수집하는 노인을 포함하면 사각지대는 더 커진다.

소씨는 “지자체에서 야광조끼를 제공하지만 착용하는 노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며 “노인이 보이지 않는 문제보다 차가 빨리 달리는 게 더 큰 사로고 이어지는 것 같다.
골목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는 일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폐지수집 노인들은 위험을 무릎 쓰고 밤길을 걷지만 손에 쥐는 돈은 적다.
서울시는 2017년 24개 자치구(강남구 제외)에서 활동하는 만 65세 이상 폐지 수집 노인 2417명을 조사한 결과 월 10만원 미만을 번다는 응답자가 51.9%에 달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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