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상자를 조형물로…'업사이클 아티스트' 주목

      2019.01.11 16:14   수정 : 2019.01.11 18:22기사원문


원인을 알 수 없는 암 발병으로 6개월 생존을 선고받은 한 중년 남성이 버려진 택배상자들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주목을 받고 있다.

업사이클링 아티스트 정현철(51) 작가가 그 주인공. 그는 지난 2017년 정확한 발병 부위를 알 수 없는 '원발부위 불명암'이 발견돼 6개월 시한부를 선고받고 2년째 암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암 발견 당시 이미 임파선으로 전이 돼 수술조차 효용 없었던 터. 어떤 방법도 소용없는 상황을 맞은 정 작가는 서둘러 죽음을 준비해야 했다.

본인 없이 세상에 남겨진 식구들 생계를 책임지고 떠나야 했고, 이를 위해 독서실 운영을 고안해냈다. 이렇다 할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처와 아이들이 할 수 있을 만한 사업이라는 생각이었던 것.

그렇게 독서실 운영을 준비하며 그는 사업장 건물 구석에서 운명과 조우했다.
그 운명은 다름 아닌 버려진 택배상자 더미.

무언가를 품고 궂은 역할을 도맡다가 그 용도를 다 한 뒤 무심하게 폐기된 종이상자들이었다. 아무렇게 수거돼 곧 그 존재가 사라질 그것들에 대해 그는 아스라한 연민이 생겨났다.

세상 풍파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을 선고받고 세상에서 사라질 본인 모습과 오버랩 됐던 것이다. 버려진 종이상자는 정 작가 자신이었던 것.

그는 그 상자를 가져다 분해하고 자르고 불리고 붙이고를 시작하며 하나하나 만들고 싶은걸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어린소년부터 로빈윌리암스, 모택동, 강아지, 고양이, 말, 코뿔소, 아이언맨, 헐크, 마이클잭슨…. 조형작품들이었다.

국내 제일의 광고기획사 제일기획 아트디렉터 출신답게 그에게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수준 있는 예술작품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정 작가가 '내 마지막 유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영'을 들여 제작한 작품들인 터라 혼(魂)과 울림이 느껴진다는 평가다. 그 가치와 예술성을 인정받아 그는 2019년 LA Art Show에 해당 작품들을 출품할 예정이다.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 작가는 업사이클링 아티스트라는 새 커리어를 갖고 살아있다. 소각장행을 면한 택배상자들도 조형작품으로 살고 있다.

정 작가의 작품은 단순히 택배상자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재활용의 개념을 넘어, 직접 기막힌 운명을 겪어내면서 소멸의 영원성을 증명하고 있는 세상의 작은 기적이다.

그 기적은 그를 응원하는 물결로도 이어지고 있다. 광고계 선후배들이 의기투합해 그의 에세이와 작품사진을 담은 '아트 에세이'집을 출판한다. 제목은 '희망은 버려지지 않는다'이다.

그 출판기념회가 1월 12일 오후 3시 KEB하나은행 광화문 지점 컬처뱅크&북바이북 광화문점에서 열린다.

인터넷상에서는 출판펀딩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한 펀딩페이지에서'희망 아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펀딩은 11일 현재까지 4백만원이 넘는 후원금액이 모였다.
목표액은 550만원이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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