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을 돌아보다 3 -캄보디아 출장 후기
2019.02.04 17:41
수정 : 2019.02.04 20:00기사원문
지난 2016년 방문했던 캄보디아는 내게 몇몇의 장면으로 각인돼 있다.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집집마다 빗물을 받기 위해 비치한 커다란 항아리, 가축이라고 부르기엔 미안할 정도로 비쩍 마른 개와 닭, 앙코르 와트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어린 아이들 등등. 국가가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아 경찰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교통 법규 위반 딱지를 끊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매우 편협하게 그 나라의 단면을 재단한 것에 불과하다. 수상가옥에 사는 그들은 그물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도시의 쇼핑몰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낮은 국민 소득, 불편한 생활 인프라, 지도자의 부패, 글로벌 대기업 자본의 깊숙한 침투와 같은 것들이 안타까웠던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한국인 통역을 맡은 현지인 친구가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울지 몰라도) 한국인이 여기 사람들보다 더 자살을 많이 하지 않느냐"라며 "여기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웃으며 말할 때는 크게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꽤나 시차를 두고 작성된 앞선 2편의 글에 달린 댓글은 대체로 "더 못사는 나라와 비교해서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그 나라보다 잘 사니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야', 라고 꼰대질이 하고 싶은 거냐"처럼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세상의 모든 꼰대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 역시 스스로는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금 꼰대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꼰대가 되고 싶진 않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능성과, 운이 좋아서 우연히 이번 생의 내게 주어진 것, 혹은 운이 나빠 내게 던져진 것을 한 번쯤 돌이켜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태어난 날이 1985년이 아니라 1952년 이었다면, 내가 태어난 곳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캄보디아의 시골이었다면, 만약 지금 이곳이 아닌 또 다른 평행우주에 나와 다른 내가 있다면 등등을 한번쯤 생각해 보자고 얘기하고 싶었다.
"도대체 그런 생각을 해서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때때로 세상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모여 가끔은 아주 쓸모가 있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최근 대단원의 막을 내린 '스카이캐슬'의 아이들이 불행한 것은 그들에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기 떄문일지도 모른다.
대학시절 소설가 공지영이 모교의 중앙도서관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공지영은 당시 특수 교육시설에서 만났던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소설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공지영은 그 이야기를 꺼냈다. 스카이캐슬의 '케이'와 같은 아이였다.
공지영이 취재를 위해 방문한 특수교육 시설의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예닐곱 살난 여자아이는 마치 미국인처럼 유창하게 영어를 말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많이 달랐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로 영어 비디오를 듣고 걸음마를 때면서 부터는 집, 영어학원만 왕복했다. 영상과 글, 소리로만 세상을 접한 그 아이는 세상에 있는 다른 친구들이란 '변수'를 배우지 못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있기 마련인 대립, 갈등 등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앞에 있는 아이(친구)가 예측을 벗어난 행동을 하면 어쩔 줄을 몰랐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발생하는 변수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통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돼보는 것. 소설의 역할이란 '배려'를 배우기 위한 것 아닐까요."라고 공지영은 말했다.
캄보디아라는 낯선 나라로의 출장 후기를 통해 "그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더 잘 사니까 더 노~오력해"라고 말하자는 추호의 의도도 없었고, 그럴 자격도 더욱이 내게는 없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