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멋' 잃어버린 인사동 "사람 많다고요? 물건 안 사요"

      2019.02.19 07:59   수정 : 2019.02.19 07:59기사원문

지난 2월 13일 빨간 한복을 차려입은 한소희씨(21)는 인사동을 방문했다. 곁에는 몇 해 전 한국에서 홈스테이하며 친해졌다는 일본인 리사씨도 함께했다.

한씨는 어린 시절부터 인사동을 좋아했다.

아기자기한 공예품과 한국적인 볼거리를 구경하는 것이 그의 취미였다. 리사씨도 과거 방문했던 인사동에 대한 기억이 좋아 다시 찾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인사동을 구경하던 한씨는 점점 달라지는 거리의 모습을 걱정했다. 아직 어린 자신이 보기에도 인사동의 모습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인사동 거리를 지켜왔던 필방, 고시계점 등이 나간 자리에는 국적 불명의 액세서리와 기념품 가게, 의류점이 들어섰다. 한국의 멋이 담겨 있던 공간에는 각종 저가 제품들이 자리를 잡았다.

■ 상인들 “전통의 물건으로는 임대료 감당 안 돼”


공예품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상권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예전처럼 물건을 팔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예전에 만엔씩은 쓰고 가던 일본인들도 물건을 사지 않는다"며 "상인들 사이에서는 백엔하는 호떡 하나 먹고 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3~4년 전과 비교하면 매상이 반 토막이다. 임대료는 여전히 비싸고 인건비도 올랐다”며 인사동 대부분의 가게들이 처한 상황을 애기했다.

A씨에 따르면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당장의 매출을 내야하는 가게들은 저가의 중국제 상품과 액세서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인사동 옷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매니저 B씨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는 인사동 하면 예스럽고, 멋스러운 운치가 있었다. 이젠 명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 하나둘씩 사라지는 인사동 터줏대감들


이 지역의 터줏대감 격인 가게의 상인들은 더 이상 한국 고유의 물건들을 사기 위해 인사동을 방문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1969년에 인사동에서 화방을 시작했다는 C씨는 “뒤죽박죽 가게들이 섞여 실제로 그림을 구매하러 오는 건 이젠 기존 단골들 밖에는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오후 늦은 시간 화방을 방문했지만 이날 팔린 그림은 단 한 점도 없었다.

도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D씨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가게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오전 10시 30분부터 밤 8시 30분까지 꼬박 10시간을 매일 일한다는 D씨는 “하루 100만원은 팔아야 임대료도 내고 나도 이익을 조금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오늘 팔린 도자기가 1점 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이렇게 팔아서야 어떻게 버티겠냐”며 나아질 기미가 없는 현실에 한숨을 내쉬었다.

■ 방문객 “다양성 없는 기념품들 사고 싶다는 생각 안 들어”

평일 오후 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인사동을 찾은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물건 구매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데이트 하러 나온 20대 커플은 “간단한 먹거리 외에는 물건을 구매할 계획이 없다.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파는 물건이 다양하지 않고, 구매하고 싶을 만큼 좋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인사동을 찾은 또다른 20대 E씨는 “인사동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젊은 가게가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그는 “전통적인 것을 젊은 사람들의 감각에 맞게 제공하는 곳이 있어야 더 많이 구매도 하고 방문객도 더 많이 찾아올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종로구 #인사동 #빈손

김홍범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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