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독립서점, 3년 만에 문 닫아...재건축에 고개 숙인 '임차인'
2019.02.22 14:17
수정 : 2019.02.22 16:09기사원문
"5년은 장사할수 있을 줄 알았죠. 재건축 앞에서 임대차보호법은 아무런 효력이 없더라고요"
22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근처의 한 독립서점에서 만난 자영업자 함모씨(33)는 이야기하는 내내 차분한 말투였다. 서점이 있는 건물주로부터 "건물을 팔고 재건축을 할 예정이니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은지 약 한달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법적으로도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지만, 보상금이라도 받고 나가려면 빨리 비워주는 수밖에 없겠더라고요"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두달 남기고 "나가달라" 통보받아
함씨는 지난 2015년 12월 서점을 열었다. 1991년 시공을 시작했다는 서점이 있는 건물은 처음부터 조금 낡은 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6개월 전 건물 리모델링을 했다"는 건물 주인의 말에 안심하고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함씨가 운영하는 가게는 전용면적 약 132㎡(40평)의 독립서점 겸 카페로, 간간히 공연도 이뤄지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사진작가인 함씨는 막 시작하는 예술가들이 작품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예술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서점을 다중이용업소로 만들기 위해선 소방시설도 필요했다. 스프링클러와 화재감지기를 설치하고, 비상구도 소방법에 맞게 바꿨다. 소방공사만 2000만원 가량 소요됐다.
개업 이후 '젊은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입소문이 나자 주말 하루에만 많게는 150~160명 가량 손님들이 찾아왔다. 2년 정도 지나자 개업 초기에 비해 매출도 늘었다. 함씨는 "당시 상가 임대차보호법으로 계약이 보장되는 5년 정도면 최소한 빚 정도는 모두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14일 함씨는 건물 주인으로부터 "새 건물주가 재건축을 위해 임차인들을 내보내는 조건으로 계약금을 걸어둔 상태기 때문에 3월 말까지 가게를 비워달라"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백방으로 해결책을 알아봤지만 건물 노후로 인한 '안전상의 이유'라는 건물 주인의 설명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해당 건물에 대한 재건축 신고가 구청에 아직 접수되지 않았다. 1년 단위로 갱신되는 계약의 종료 시점인 12월까지 영업을 해도 법적으론 문제될게 없었다. 그러나 보상금도 못받고 이사비용 마저 또 빚을 지게될까 두려웠다. 함씨는 이제 막 자리잡기 시작한 가게를 뒤로하고 새로운 공간을 알아보러 다녔다.
■'재건축 건물' 임차인 보호 못해
국회에 따르면 임대료 급등으로 거리에 내몰리는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주요 골자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의 행사기간을 5년에서 10년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기간을 지키지 못하고 내쫓기는 임차인들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엄정숙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재계약 당시 관련 고지를 한 경우만 가능하다"며 "소송을 하면 충분히 다퉈볼만 한 상황"이라고 함씨의 경우를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재건축·재개발을 이유로 내쫓기는 임차인들이 많기 때문에 2015년 관련법이 강화됐지만 아직은 관행적으로 (함씨와 같이)보상금 등 간접적인 권리만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함씨는 지난 21일 가게를 이전할 새로운 장소를 계약했다. 유동인구가 더 적고 보증금 2000만원, 월세는 100만원이나 올랐지만 최소한 재건축을 이유로 쫓겨날 이유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함씨는 "당장 3월에는 이중으로 월세가 나갈 예정"이라며 "새로운 가게에서 지금처럼 매출을 회복하기 위해선 짧게 잡아도 6개월은 더 걸릴 듯 하다"고 말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