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고 5시간 이리저리…탑골공원 밖에 갈 곳 없지"

      2019.03.05 07:59   수정 : 2019.03.05 07:59기사원문
[편집자 주] '노인情'은 지금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기자 양반, 늙어봤어? 나는 젊어봤어…젊은이들은 갈 곳이 많겠지만 우린 여기밖에 없다고"

지난달 26일 방문한 서울시 종로구 탑공공원은 여느 때와 같이 노인들 뿐이었다. 한쪽에선 십여 명의 노인이 모여 왁자지껄 활기를 띠는 듯했지만 대부분의 노인은 바위에 홀로 앉아 텅 빈 하늘만 바라봤다.



이날 3시 탑골공원에 모인 노인들은 약 100여 명. 70세를 넘긴 노인남성이 다수였다. 11시부터 와서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고 4시간째 앉아있다는 노인들은 저마다 같은 듯 다르게 탑골공원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15년간 매일 탑골공원에 오고 있다는 안병환 할아버지(72)는 "아내랑 헤어지고 자식은 둘 있는데 한 명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며 "자기들도 먹고살기 힘든데 부모라고 도와주겠나. 25만원 짜리 쪽방에서 죽지 않을 만큼 난방을 틀고 산다"고 말했다.

안 할아버지는 "쪽방에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서 여기와 있는 게 낫다. 지하철도 공짜지 않나"라며 "천안에서도 오고 파주에서도 오고 지하철에서 왔다갔다 4~5시간씩 시간 보내고 여기 오는 영감들이 많다. 매일 오는 영감이 한동안 안 오면 그저 잘못됐나 싶다. 우린 그런 나이다"라고 털어놨다.


인천에서 2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 김순남 할아버지(81)에게 탑골공원은 노인정보다 편한 곳이다. 김 할아버지는 곧 있으면 동료 노인들이 와서 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2년째 매일 이곳에 오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노인정에 있으면 답답하고 불편한 데 탑골공원은 조용하고 마음이 편하다"며 "안오면 심심하고 할 게 없다. 여기라도 와서 떠들고 가면 운동도 되고 좋다. 커피도 50~100원이면 한 잔 마실 수 있고 식대도 2천원이면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괜히 젊은이들 많은데 가봐야 눈치만 보인다"며 "날이 춥거나 더우면 탑공공원에 앉아있기도 힘들어서 하루 종일 지하철만 왔다 갔다 시간 보내는 게 일이다"라고 씁쓸히 웃었다.

동묘에 살고 있다는 이용자 할머지(81)는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 별로 없다. 탑골공원만 해도 그늘에 의자가 없어서 다들 땡볕에 앉아있다"며 "우리는 역사적으로 고생한 세대인데 노인들을 창피해하고 멀리하는 거 같아서 서러울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18'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기준 상대적 노인빈곤율은 42.2%로 높게 조사됐다.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도 14.2%로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오래다.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엔 하루 한 끼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노인들이 모인다. 노인무료급식소 '사회복지원각'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강소윤 씨에 따르면 점심 식사 배식을 받으러 오는 노인의 수는 하루 130여 명이 넘는다.

그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독거노인도 많지만 집에서 눈치만 보다 끼니를 챙기지 못해서 무료급식소를 찾는 노인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강 씨는 "전에는 노숙자나 독거노인이 많이 왔지만 세상이 바뀌어서 가정이 있는데 오는 할아버지도 많다"며 "하루에 한 끼 먹기도 힘든 사람들은 아침 일찍 와서 줄 서고 상상하지 못할 만큼 밥을 많이 드시고 간다. 하루 종일 굶주려있던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여기 오는 노인분들은 모두가 외롭다"며 "외양적으로 멀쩡한 사람이 와서 밥 먹는다고 욕하면 안된다. 다들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온다.
이들 또한 사회에서 기댈 곳 없고 버림받은 분들"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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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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