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외침에 눈 흘긴 전두환…억장 무너진 방청객
2019.03.12 14:28
수정 : 2019.03.26 16:10기사원문
울분 가득했던 전두환 광주 재판 현장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전두환 살인마!" "전두환 사죄해!"
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 대법정 201호. '전두환 재판'을 지켜보던 방청객들의 고성이 잇달아 울려퍼졌다.
전두환씨의 변호인이 80년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며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재판이 마무리되던 무렵이었다.
재판 진행 중 한 방청객이 "변호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소리치다 법정 경위들에 제지당할 때까지만 해도 법정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공판 준비절차는 4월8일 오후 2시에 정하겠다"며 재판을 마치고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전씨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20여명의 방청객이 일제히 소리쳤다.
"살인자 사죄해." "전두환 처벌해라."
전씨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재판 내내 입을 굳게 다문 채 졸다깨다를 반복하며 정면만 응시하던 전씨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방청석을 쳐다봤다. 75분 재판 중 전씨가 방청석을 쳐다본 건 처음이었다.
전씨는 "전두환 살인마"를 외친 방청객을 노려보며 입술과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법정을 빠져나갔다.
39년 만의 '전두환 광주 재판'은 '이번엔 사죄나 반성하지 않을까'라는 광주시민들의 일말의 기대감을 깡그리 무너뜨렸다.
전씨는 이날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재판 내내 다섯차례나 졸다깨다를 반복하며 법정을 모독했다.
재판 전까지만 하더라도 방청객들은 전씨에게 '사죄'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5·18부상자회 회원인 김명진씨(86)는 재판 시작 전 법원 관계자들에게 "전씨에게 핫팩을 주고 싶다"고 제안했으나 제지당했다.
핫팩은 '온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김씨에게는 뼈아픈 상처이기도 했다.
김씨는 1980년 5월20일, 군인 3명이 대학생에게 기합을 주고 있길래 "뭐하는 짓이냐"라고 말한 이후로 기억을 잃었다고 한다.
김씨는 "내가 39년전 그날 계엄군한테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이후로 반시체 상태로 집에 던져졌다. 지금 이가 하나도 없고 다리도 전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뼈마디가 시려 이렇게 핫팩이라도 주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게 광주의 마음"이라며 "핫팩을 전해줘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했다.
75분간의 재판이 끝난 후 김씨는 울먹였다. 함께 방청한 시민들도 눈물을 흘렸고 차분했던 법정은 울분과 분노로 가득찼다.
김씨는 "동물을 학대해도 벌을 받는데 수 많은 사람을 죽인 그 만행을 저지르고도 저렇게 잘만 산다"며 방청석을 째려보고 나가는 전씨를 향해 소리쳤다.
또 다른 김모씨(81)는 "검사와 변호사가 오가면서 변론해야 하는데 전씨 변호인만 1시간을 떠든 것 같다. 전씨 변호사가 모두 거짓말만 늘어놓아 너무 분했다"고 격분했다.
5월단체 회원 이모씨(65) 역시 "전두환 기가 살아있다. 광주에서 고개 숙이고 들어와도 모자랄판에 잠을 자질 않나, 고개 빳빳이 들고 째려보기까지 한다"며 법정에서 '꾸벅꾸벅'졸다 방청석을 흘기고 나간 전씨의 태도에 분노했다.
재판 전 시민들은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며 전씨의 사과나 반성을 기대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난 후엔 "전두환에게 기대한 게 잘못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전북 김제에서 재판 방청을 위해 기차를 타고 광주를 찾았다는 김준길(83)씨는 "전씨는 역사와 나라의 수치"라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보탰다.
"전두환을 살려놓은 게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