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극과 만난 판소리, 창극 '패왕별희'
2019.03.13 18:37
수정 : 2019.03.13 18:37기사원문
경극의 대표 레퍼토리 ‘패왕별희’를 창극으로 즐긴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이 오는 4월 5일(금)~14일(일) 대만의 경극 배우이자 연출가 우싱궈와 함께 창극 ‘패왕별희’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올린다.
우싱궈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린슈웨이가 극본과 안무를 맡고, 소리꾼 출신 이자람이 작창과 공동작곡, 음악감독을 맡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국립극장의 창극 현대화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지난 7일 퇴임한 김성녀 예술감독은 창극을 연극, 오페라 등 이종 장르와 융합하고, 해외 예술가와 협업하는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우싱궈는 1986년 대만당대전기극장을 창설, 경극에 서양고전을 접목한 공연을 연출, 제작해왔다.
우싱궈는 12일 '패왕별희' 기자간담회에서 “2년 전 김성녀 예술감독이 나를 찾아와 같이 세계무대로 출발해보자고 했을 때 순간 왜 나를 찾아왔는지 의아하면서도 자신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모든 나라의 전통문화가 위기를 느끼던 상황에서 더 용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통은 현대와 융합할 때 더 가치가 있다. 지난 30년간 경극의 현대화에 노력해왔고, 셰익스피어, 그리스 비극, 카프카 등 서양의 고전과 문학을 경극으로 만들어왔다. 경극은 다원화가 가능한 예술인데, 판소리 역시 더 많은 문화를 수용하고 융합할 수 있는 문화형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판소리에 대해 “인류의 아픔과 비극을 노래하기에 적합한 예술”이라며 “소리에 굉장히 힘이 있어 웅장한 서사도 어울리고, 섬세해 로맨스도 표현하기에 좋다고 생각해 ‘패왕별희’를 선택했다”며 “경극과 창극이 어떻게 결합될지 우려가 많은데, 판소리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고, 판소리의 문화적 요소를 유지하면서 경극의 장점을 결합해 판소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배우들과 한창 연습 중인 그는 “한국 관객이 새로운 시도에 매우 큰 놀라움을 느낄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보리라 자신한다”고 말했다.
이자람 음악감독도 “경극와 융합된 창극이 더 나아지고 더 넓어졌는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달라진 효과는 있다”고 자신했다. “배우들이 소리만 할 때와 달리 동작을 함으로써 직접 몸으로 그 변화를 겪고 있는데, 이번 공연이 끝나면 오히려 몸짓 없이 소리만 하는 창극이 심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작업을 통해 발견한 경극의 매력도 전했다. “평양식 냉면처럼, 한번 빠져들면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처음에는 경극에서 슬픈데 왜 잉잉 우는 소리처럼 표현하는지, 잘 이해가 안됐다. 인내심을 갖고 봤더니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있더라. 상징적인 움직임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멋이 느껴졌다. 응집의 미학이라고 할까. 나는 판소리를 좋아하나 그걸 잘 모르는 사람이 있듯이, 내가 알게 된 경극의 아름다움과 멋을 어떻게 전할지 계속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
그는 “경극이라는 거대한 문화로 항해를 떠난 기분”이라고도 했다. “우싱궈 연출이 겪은 경극의 역사와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창극의 역사가 만나는 작품이다. 그 만남에서 제가 놓치지 않으려는 것은 균형이다.”
국내 팬들에게 ‘패왕별희’는 경극보다는 장국영 주연의 영화 ‘패왕별희’로 더 친숙하다. 하지만 이번 창극 ‘패왕별희’는 영화와 줄거리가 다르며, 동명의 경극이 원작이다.
춘추전국시대 초한전쟁을 배경으로 초패왕 항우와 한황제 유방의 전쟁, 항우와 연인 유희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다.
경극 원작과 차이라면, 항우가 유방을 놓쳐 패전의 원인이 된 ‘홍문연’ 장면과 항우를 배신하고 유방의 편에서 그를 위기에 빠뜨린 한신의 이야기를 추가한 것이다.
창극 대본을 쓴 린슈웨이는 “항우와 우희가 이별하고 자결하는 ‘패왕별희’ 장면이 왜 슬픈지 중국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두 장면을 추가했다”며 “제 목표는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이고, 항우와 우희를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옛말에 ‘실패한 사람은 끝까지 실패한 사람이고, 이긴 자만이 영웅이다’라는 말이 있다. 결과적으로 항우는 실패한 인물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사기’ 제왕 편에 항우를 수록하면서 그를 재평가한다.
우싱궈는 말한다. “항우는 전쟁의 신으로 여겨질 정도로 전쟁에서 져본 적이 없다. 항우는 스스로 자결해 무너졌다. 그는 유방을 죽일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고, 또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었는데 죽음을 선택했다. 승패에 상관없이 그의 태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영웅으로 여기게 한다고 생각한다.”
창극 '패왕별희'에서 초나라의 항우 역은 정보권(객원배우), 우희는 김준수, 책사 범증은 허종열이 맡았다. 한나라의 개국 황제가 되는 유방 역은 윤석안, 부인 여치는 이연주, 책사 장량은 유태평양이 맡았다.
새롭게 추가된 주요 인물엔 맹인노파가 있다. 국립창극단 중견 배우 김금미가 맡은 맹인노파는 창극의 도창과 같은 역할로 극의 외부에서 상황을 논평한다. 작품 곳곳에 등장해 항우의 영웅성과 비극적인 결말을 노래로 전할 예정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