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희생양? 도안 티 흐엉과 시티 아이샤
2019.03.16 11:49
수정 : 2019.03.16 11:50기사원문
사건으로 부터 이틀 뒤, 말레이 경찰은 쿠알라룸푸르 공항 쇼핑몰에서 LOL 상의의 주인공인 베트남 여성이 체포됐다. 도안 티 흐엉으로 알려진 그는 자신이 김정남을 알지 못하며 몰래카메라인줄 알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흐엉이 이제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체포될 당시 가지고 있던 여권에 따르면 흐엉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남딘성 응히아빈에서 1988년 5월 31일 태어나 올해 한국 나이로 32세다. 흐엉의 아버지인 도안 반 탕은 2017년 외신들과 인터뷰에서 흐엉이 19세 되던 2007년에 하노이의 약학대학에 입학한다며 고향을 떠났다고 말했다. 탕은 딸이 이따금씩 고향에 내려왔고 김정남 사건 1달 전인 2017년 1월 설 명절에 내려와 5일간 머물다 떠났다고 밝혔다. 흐엉이 가족에게 말한 대로 약대생의 길을 걸었는지는 의문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사건 열흘 뒤 보도에서 흐엉의 친구들을 인용해 그가 배우와 댄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흐엉이 2016년 6월에 오디션 프로그램인 '베트남 아이돌'에 사촌의 이름(딘 티 쿠옌)을 빌려 출연해 1차 심사에서 노래를 불렀으나 탈락했다고 전했다.
흐엉은 딘 티 쿠옌이라는 이름으로 짧은 유튜브 동영상에 출연하기도 했고 그가 다른 가명으로 운영한 페이스북에는 스스로 부른 노래 동영상이 수차례 올라왔다. 페이스북에는 한류 가수들의 사진이 다수 게시되어 있었으며 64명의 페이스북 친구 가운데 20여명이 한국인이었다. 그가 2016년 11월에 교제중인 한국인 남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정황도 포착됐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그는 한류에 빠진 전형적인 연예인 지망생으로 보인다. 흐엉은 체포 당시 자신의 직업을 '배우'라고 적었다.
그의 과거에 대한 그나마 확실한 기록은 말레이에서 열린 재판 중에 나왔다. 지난해 3월 재판에 출석한 응우옌 빗 투이는 자신이 흐엉과 2014년부터 2016년 5월까지 하노이 시내 주점에서 함께 종업원으로 일했다며 흐엉이 사교적인 성격이라고 말했다. 투이는 이후 남편과 따로 술집을 차렸다. 그리고 2016년 12월 27일, '와이(Y)'라는 이름을 쓰고 자신이 베트남인과 한국인의 혼혈이라고 소개한 인물이 투이의 가게에 찾아왔다. 그는 한국 업체가 제작하는 몰래카메라에 출연할 배우를 찾는다며 투이에게 출연 제의를 했다. 투이는 이를 거절하고 평소 연기에 관심이 많던 흐엉을 떠올려 Y에게 소개시켜줬다. Y는 흐엉에게 매달 1000달러(약 113만원)를 주는 조건으로 흐엉을 고용했고 김정남 사건 발생 전까지 약 2달간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을 오가며 낯선 사람의 얼굴에 액체를 바르는 '몰카 연습'을 했다. 흐엉은 연습마다 250달러를 받았다. 흐엉은 2017년 2월 4일에 말레이에 입국해 '촬영' 날짜를 기다렸다. 조사 결과 Y는 전 주베트남 북한 대사의 아들인 리지현으로 사건 당시 북한 외무성 소속 통역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베트남에 약 10년간 살아 현지어 능통했으며 2016년 12월에 북한 보위성 소속 요원인 리재남과 함께 하노이에 도착해 2인 1조로 '배우' 포섭에 나섰다. 흐엉은 2017년 2월 말레이 입국 전까지 시티 아이샤의 존재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시티 아이샤는 사건 당시 맨 처음으로 김정남의 얼굴에 VX를 묻힌 인도네시아 여성이다. 그는 사건 발생 사흘 뒤인 16일 오전 2시 무렵 쿠알라룸푸르 시내 플라밍고 호텔에서 객실에서 체포됐다.
시티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서쪽으로 약 120㎞떨어진 반탄주 랑카수무르에서 1992년 2월 11일에 태어나 올해 27세가 됐다. 인구가 500명 남짓한 시골마을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이슬람 신자였고 배움은 초등학교 졸업으로 만족해야 했다. 랑카수무르에는 중학교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농사를 돕던 시티는 늘 도시를 동경했다. 그는 15세가 되던 해에 친척의 소개로 자카르타의 작은 의류공장에 들어가 하루 13시간씩 일하면서 한 달에 50달러를 받았다. 공장 인근 주민들은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시티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시티는 17세가 되던 해 공장 사장의 아들과 결혼했고 아이를 가졌다. 부부는 2011년에 공장 운영이 어려워지자 쿠알라룸푸르로 이사했다. 시티는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
이듬해 시티의 남편은 시티가 불륜을 저질렀다며 갑작스레 그와 이혼했다. 시티는 아들과 함께 잠시 고향에 돌아왔지만 곧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인도네시아 바탐섬으로 떠났다. 그는 바탐의 의류공장에서 아들과 함께 살아갈 만 한 돈을 모았지만 도시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다. 시티는 2015년에 쿠알라룸푸르로 돌아와 저가 호텔의 스파에서 일했다. 그는 몇 개월 뒤에 플라밍고 호텔의 마사지사로 이직했고 더 많은 수입을 위해 가명으로 현지 매춘 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리기 시작했다. 플라밍고 호텔의 동료들은 시티가 명목상 마사지사이긴 하지만 사실은 호텔 손님들에게 매춘을 했다고 증언했다. 시티의 다른 지인은 그가 30일짜리 여행자 비자가 끝날 때마다 말레이를 떠나 고국에 간 뒤 새 비자를 받아서 돌아왔고 2017년 들어서는 마약에도 손을 댔다고 밝혔다.
그가 김정남 사건에 엮이게 된 때는 같은해 1월 5일이었다. 시티는 당시 호텔일을 마치고 쿠알라룸푸르 유명 클럽인 비치클럽카페로 향했다. 클럽 직원들은 SCMP와 인터뷰에서 김정남도 가끔씩 클럽에 왔었다며 시티 역시 클럽에서 손님을 물색했다고 설명했다. 시티가 5일 밤 클럽 앞에서 택시를 기다릴 때 전에 그와 안면이 있던 '존'이라는 택시 기사가 시티를 불렀다. 당시 존은 낯선 사람의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비디오에 출연할 여성을 찾는다며 100달러 이상을 주겠다고 말했다. 시티는 다음날 존의 소개로 쿠알라룸푸르의 한 쇼핑몰에서 '제임스'라는 인물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일본인이라며 중국과 일본의 온라인 동영상 채널에 올릴 몰래카메라 코미디 쇼를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제임스는 시티가 출연에 동의하자 낯선 사람의 얼굴에 매운 소스를 바르는 동영상을 보여준 다음 그 자리에서 3명의 행인에게 연습을 시켰다. 시티는 연습의 대가로 400링깃(약 11만원)을 받았으며 다음날 다른 쇼핑몰에서 비슷한 연습을 하고 돈을 받았다. 제임스는 다음에 공항에서도 해 보자고 제안했다. 시티의 지인들은 김정남 사건 이후 시티가 항상 배우가 되길 원했다고 회상했다. 시티는 같은달 캄보디아로 이동해 '장'이라는 인물과 만났다. 장은 자신이 중국 리얼리티 TV쇼 제작자라며 시티에게 제임스가 시켰던 연습을 반복 시켰다. 시티는 김정남 사건 발생 11일 전인 2일에 말레이에 입국했다. 말레이 당국 조사에 의하면 장은 북한 외무성 소속 요원 홍송학으로 밝혀졌고 제임스는 소속을 알 수 없는 북한인 리지우로 알려졌다. 택시기사 존은 이번 사건의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다.
말레이에서 만난 시티와 흐엉은 사건 발생 전까지 약 열흘 동안 쿠알라룸푸르 시내 곳곳에서 함께 촬영연습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모리’라는 가명을 쓴 리재남과 리지우와 마찬가지로 ‘제임스’라는 이름의 쓰던 인물이 합류했다. 새롭게 등장한 제임스는 오종길이라는 북한 보위성 소속 요원이었다. 사건 당일 리재남과 홍송학, 리지현은 오전 7시 30분 무렵 같은 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시티와 흐엉과 접선, 이들의 손에 VX를 발라줬다. 3명의 북한인들은 공격이 성공하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들러 옷을 갈아입고 출국장으로 향해 오종길과 합류했고 곧장 해외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지우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말레이 검찰은 시티와 흐엉을 체포한 뒤 이들이 도망간 북한인 4명과 마찬가지로 훈련된 암살자라고 주장했다. 검찰 측은 두 사람이 말레이에 입국해 함께 예행연습을 벌였고 범죄 직후 바로 화장실로 향해 손에 묻은 VX를 씻어내 VX의 위험성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흐엉은 해당 물질이 VX 인줄도 몰랐고 리지현이 씻으라고 말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저 촬영 이후 바로 자리를 피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기름기와 냄새, 불쾌감 때문에 서둘러 씻은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또한 변호인측은 검찰이 공항 폐쇄회로(CC) TV 화면을 짜깁기 했다고 강조했다.
2년 넘게 미궁 속에 빠진 김정남 사건은 지난 11일 말레이 검찰이 설명 없이 시티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고 석방하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검찰은 14일 발표에서 흐엉은 석방하지 않겠다고 밝혀 충격을 더했다.
과연 이들이 북한의 마수에 걸려든 희생양들인지, 아니면 정말 북한과 비밀스런 관계가 있는 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흐엉은 체포당시 여권과 여행가방도 없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서성이다 체포됐는데 그는 “동료를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흐엉은 또한 사건 직후 시티와 북한 용의자 4명과 시내 모처에서 합류했으나 이튿날 시티와 4인조가 연락 없이 사라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해명해 줄 시티는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직후 사건에 대한 모든 질문을 거부하고 있다. 과연 김정남 사건의 전모는 언제쯤 밝혀질 수 있을까?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