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의 해방자'라 불리는 그 "10억 자산가도 있어.. 절대 여지 안 줬다"

      2019.03.30 10:29   수정 : 2019.03.30 11:48기사원문

지난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역 앞 영중로 노점이 철거됐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대환영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영등포역 앞 삼거리에서 영등포시장까지 이르는 영중로 340m 구간은 불법 노상점포 58개가 인도를 점용하고 불법적인 영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영중로 보행환경 개선사업’은 민선 7기 채현일 현 영등포구청장의 공약이자 ‘영등포 1번가’ 청원 1호였다. 채 구청장은 해당 공약을 이행할 적임자로 조영철 과장(가로경관과 업무 총괄)과 김명미 주무관(영중로 보행환경 개선사업 총괄)을 콕 찍었다.


28일 영등포구청 별관 가로경관과 사무실에서 김 주무관을 만났다. 그는 처음 인사발령 소식을 접하고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일명 ‘노가다 부서’로 꼽히는 건설과 등지에서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영중로 노점 문제 만큼은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거라고 회상했다.

-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 1990년 임관해 만 29년 동안 영등포구청에서 근무 중이다. 현재 가로경관과에서 ‘영중로 보행환경 개선사업' 총괄을 맡고 있다.

- 구청 직원들 사이에서 ‘영등포역의 해방자’라고 불린다. 기분이 어떠냐.

▶ 과분한 말이다. 주변에서 전화는 많이 받았다. 이 일은 저 혼자 한 일이 아니라 팀원들과 함께 이뤄낸 일이다. 예전부터 영중로 거리를 바꿔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영등포구는 나의 첫 부임지이자 오랫동안 근무해온 곳으로서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항간에는 이곳을 ‘포장마차 성벽’이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살기 좋은 영등포구가 이런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이 늘 마음이 불편했다. 결과적으로 해놓고 보니 보람이 크다.

-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그동안 노점들의 불법적인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 열악한 보행환경(도로점용)이 제일 컸다. 노점들이 인도의 3분의 2를 뒤덮고 있었고 비 오는 날에는 우산도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은 노점이 없는 그 자체만으로 시원하고 뻥 뚫리는 쾌적함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좋아해 주시는 거 같다.

- 지난해 11월, 채 구청장이 “영등포역 주변 노점상을 내년 상반기 중에 거리가게 허가제로 정비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당시 무슨 생각이 들었나.

▶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너무 열악해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도 이번엔 변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건설과에 있을 때 여성이지만 현장을 많이 다녔고, 시위 같은 험한 일을 숱하게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힘들게 뻔해 보였다. 그땐 정말 전쟁터에 뛰어드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만약 해낸다면 큰 보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 철거되기 전 영중로 노점은 어느 정도였나.

▶ 영중로 노점은 2016년 71개까지 최대치를 찍었다가 2017년부터 58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상인 자산상 정리로 인해 30개소(거리가게)가 남았다.

- 정책적으로 벤치마킹한 다른 지자체 사례가 있었나.

▶ 경기 부천 북부역, 서대문구 '연세로 스마트 거리가게',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 등 웬만한 곳은 다 가봤다. 그중 동작구 이수역 태평백화점 앞 노점 거리를 자주 찾았다. 담당 공무원과 많은 얘기를 나눴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 사실 기습 철거가 아니였다고.

▶ 그렇다. 포장마차 안에는 냉장고 부터 온갖 가재도구가 가득했다. 그게 있었다면 어떻게 두 시간 만에 치웠겠나. 사실 상인들께는 두 달 전부터 공지했고 그 전날까지 대화를 했다. 상인들은 철거 전날까지 장사를 하고 밤새서 다 치웠다고 들었다.

강제 집행은 사실 ‘침익적 행정’이다. 단속을 하고 단속을 당하는 입장이지만, 지난해부터 수차례 만나서 술도 한 잔하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은 분들이 많았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서 이뤄낸 것이다. 협조해준 상인들에게 감사한 마음도 크다.

- 상인들의 저항은 없었나.

▶ 왜 저항이 없었겠나. 순순히 포기하지 않았던 분들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힘들었다. 왜 내가 이 부서에 와서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상인들에게 ‘모범사례 보여주자’ ‘생계형 노점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계속 설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들도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더라.

상인들 중에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 했어’라고 말할 만큼 트인 분들도 있었다. 이런 분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오늘 같은 날이 온 거다.

-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

▶ 생계형 노점을 하기 위해선 상인들의 재산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자산을 조회할 수 있는 ‘자산가액 조회 동의’를 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우리는 물론 시민들은 정말 상인들이 기업형인지, 생계형인지 모른다. 그 대상을 구분하려면 상인들의 자산을 조회해야 하는데, 이 동의를 얻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한 번은 상인 연합회에서 사무실에 찾아와 자신들이 제출한 서류를 돌려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말이 안 통하자 그때 ‘길거리에 나가서 노점 철거를 반대한다는 시민들 동의서를 받아오라. 그럼 돌려주겠다’라고 엄포를 놨다. 이렇게 큰소리가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했던 건 구청에서 절대 여지를 주지 않았던 점이 컸던 거 같다. 구청에서 나왔다고 하면 상인들은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는 그때마다 ‘이번엔 다르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가 분명히 할 거다’라고 계속 찾아가서 설득했다. 특히 김 팀장님이 강하게 밀어줬고, 채 구청장님의 의지도 워낙 강했다.

- 실제로 상인들 중에 고액 자산가가 있었나.

▶ 일부 상인들 중에 10억 원 이상 고액자산가가 있긴 있었다. 많은 인원은 아니었다. 이분들은 거리가게에서 탈락했다.

- 철거하고 나서 상인들 반응은 어땠나.

▶ 어제도 만나고 왔다. 어떤 분은 ‘그래 치우고 나니까 좋긴 좋네’라고 하신 분도 있었다.

- 구청에서 향후 유효 인도폭을 1.5~2m로 만든다고 했는데.

▶ 처음에는 거리가게를 58개로 예상하고 계획을 짰다. 그런데 자산 조회를 하면서 30개로 많이 줄었다. 그래서 좀 더 쾌적하고 넓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최대한 2.5~3m 이상 확보할 계획이다.

- ‘거리가게’ 30개소가 설치되고, 허가제를 시행한다. 어떤 제도 인가.

▶ 거리가게 허가제는 지난해 6월 서울시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마련했다. 생계형 노점 상인들과 상생하자는 게 목적이다. 허가가 난 분들은 도로점용료를 내야하고 부부 외에는 상속·전매·전대를 못하도록 못 박았다. 만일 이걸 안 지키면 바로 강제 철거하기로 약속했다.

- ‘거리가게’ 선정에 대해서 아직도 의구심을 가진 시민들이 많다. 본인재산 3억5000만원, 부부합산 4억원이 생계형이라고 할 수 있나. 어떻게 생각하나.

▶ 사실 이 부분에서 타협점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처음 7억원(부부 합산)부터 시작했고, 최대한 낮춰서 4억원이 된 거다.

상인들이 반발하자, 우리가 ‘5억원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계형이라고 할 수 있겠냐’ ‘먹고살기 위해 하는 생계형 노점이라고 시민들에게 얘기했는데 누가 믿겠냐’ ‘공무원들도 없는 사람들 많다’는 식으로 강하게 얘기했다. 그리고 ‘몇 십 년 동안 장사했으니 이제 그만 시민들에게 (영중로를) 돌려 달라’고 설득했다.

- ‘거리가게’ 점포는 어떤 모습인가
▶ 현재 ‘상생자율위원회’에서 연구 개발하고 있다. 규격화된 디자인으로 만들어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예전에는 포장마차 안에 큰 통에 물을 받아서 조리하지 않았나. 엄청 비위생적이었다. 이걸 오는 7월까지 상하수도 및 전기 공사를 마치고 깨끗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수도와 전기가 연결된다는 뜻인가.

▶ 그렇게 계획을 잡고 있다. 사용료 이런 건 상인들이 부담한다.


- 앞으로 영중로는.

▶ 걷고 싶은 거리가 됐으면 좋겠다. 보행자 친화거리로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아름답고 쾌적한 거리로 바꾸고 싶다.
시민들이 보시고 ‘영중로가 달라졌구나’ 할 수 있는 길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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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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