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경제침략 장본인이 1만엔에… 아베 역사관에 출구 잃은 한일관계

      2019.04.09 17:14   수정 : 2019.04.09 17:14기사원문

【 도쿄=조은효 특파원】 일본 정부가 '레이와(令和)시대'에 맞춰 일본 경제의 상징인 1만엔권(약 10만2600원) 속 인물을 후쿠자와 유키치에서 시부사와 에이이치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는 일본 내에선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나 우리로선 구한말, 일제강점기 경제수탈이란 치욕의 역사를 안겼던 장본인이다. 출구를 잃은 한·일 관계가 이번엔 1만엔권 초상화 논란에 휩싸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9일 기자회견을 열어 1만엔·5000엔·1000엔권 지폐 도안을 전면 쇄신하겠다며 이 중 1만엔권에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초상화를 넣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10만원과 가치가 비슷한 1만엔권 지폐는 일본 지폐 중 가장 고액권이다. 일본 재무성은 준비 과정을 거쳐 5년 뒤인 2024년 상반기 새 지폐를 발행할 계획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유럽의 근대 금융·경제제도에 눈을 뜬 메이지시대 경제관료로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은행 설립을 주도, 일본 근대 금융제도의 기틀을 확립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국립제일은행 설립을 비롯해 도쿄증권거래소, 여타 은행 설립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금융뿐만 아니라 제지·운수·방적·비료·해운·철도·시멘트·광산 등 국가 기간산업 설립에 기여했다.
그가 경영하거나 관여한 기업만 5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35년간, 새 지폐 발행까지 남은 기간(5년)을 더하면 총 40년간 1만엔권을 장식할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가 '탈아론'에 입각한 메이지 시대의 '사상가'라면,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경제개혁을 일궈낸 '현실 정책가'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일본 내에선 개혁과 변화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는데 문제는 그가 한말 일본의 한반도 경제수탈에 전면에 섰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조직적 수탈을 위해 구한말 화폐를 발행하고, 경부선 철도를 개설했으며,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 사장을 맡았다. 한반도에서 발행한 제일은행권 지폐 3종(1원, 5원, 10원권)에 그 은행 총재인 시부사와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게 함으로써 화폐 자주권을 잃은 한반도에 치욕의 역사를 남기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1만엔권의 얼굴로 삼겠다는 건 과거사를 부정하는 수정주의적 사관과 더불어 식민지배 피해국인 주변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아소 부총리는 이날 화폐 쇄신 계획을 발표하며 "국민 각계 각층에 폭넓게 인정되고 있는 분들을 (새 화폐 속 인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지폐 디자인 쇄신이 기술적으로는 위조방지를 강화하기 위해서이며, 정치적으로는 레이와 시대 개막에 맞춰 아베정권이 경제성장과 변화의 분위기를 주도해가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5000엔권에는 메이지 시기 여성 교육 개척자인 쓰다 우메코(1864~1929), 1000엔권에는 일본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기타사토 시바사부로(1853~1931)의 초상화가 그려질 예정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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