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책임은 청와대"… 달라진 대응시스템 안전사회 기대

      2019.04.14 17:47   수정 : 2019.04.14 17:47기사원문

5년 전 4월 16일, 304명의 생명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은 물론 모든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동시에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남겨졌다. 부실하다는 말도 아까울 정도의 국가 재난대응체계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규제를 강화해야 할 안전규제가 완화되는 추세에서 발생한 국가적 참사에 국가재난대응 체계 전반에 심각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재난대응 업무를 담당하던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는 2014년 11월 행정자치부, 국민안전처, 인사혁신처 세 부처로 쪼개지는 수난을 겪었다.
국민안전처는 안전업무의 전문성을 위해 탄생한 부처지만 명령 지휘계통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장관급 부처로 탄생한 국민안전처는 지방과 연계성이 떨어져 재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전국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고 지원하는 역할에 한계가 노출됐다. 5년이 지난 지금 국가의 재난대응시스템은 어떻게 변했을까. 정부는 2015년 3월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마련했다. 재난·안전관리 체계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안전 매뉴얼 마련과 전문인력 양성 등 안전사회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인프라는 앞으로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문재인 정부 이후 국민안전처를 합병해 재탄생한 행정안전부 및 정부의 재난역량대응 체계가 시험대에 올랐다.

■참사 부른 '재난 컨트롤타워의 부재'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52분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최초 신고가 접수됐다. 이후 무려 53분이나 지난 9시45분, 재난대응 지휘부인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가동됐지만 컨트롤타워 역할은 커녕 현장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취합하기에도 바빴다. 구조자 숫자를 잘못 발표하면서 발생한 혼란과 구조 지연에 따른 책임으로 국가의 재난안전체계는 무너졌다.

청와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참여정부 이후 청와대의 국가재난대응 기능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산하에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설치해 청와대가 직접 대형 재난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관리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NSC 사무처가 폐지되고 위기관리센터도 행정관급 위기정보 상황팀으로 쪼그라들었다. 통일·외교·군사 등 안보분야 기능만 청와대에 남겨뒀다.

박근혜 정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외교안보 분야 대응에 주력하느라 재난안전에는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청와대측은 "청와대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언하면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5년 정부가 마련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재난현장에서 작동하는 강력한 지휘통제력이 미흡하고 컨트롤타워의 권한과 책임이 불명확해 신속한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경고다.

■문 정부 '재난은 청와대 책임' 명확화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국가적 재난이 발생할 경우 청와대가 초기 상황파악과 대응의 최종적인 지위 통제권을 행사하는 컨트롤타워임을 명확히 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기관들이 수시로 영상회의를 열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 하는 등 행정기관 역량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대응체계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번 강원도 대형 산불 대응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재난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산불 발생 당일인 5일 0시를 기점으로 중대본을 가동했고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도 총력대응을 지시했다.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도 임기 마지막 날을 앞두고 현장으로 급파됐다. 소방청을 비롯한 산림청, 군, 자치단체 등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산불 확산을 막았다.

이재은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소장은 "현 정부는 명확하게 (국가재난을) 청와대 책임으로 돌렸다. 굉장히 중요한 의미"라며 "고성산불 대응에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리더십을 발휘했다. (청와대 컨트롤타워가)실증적으로 입증됐다"고 평가했다.

■소방 국가직화로 신속 대응

중앙의 컨트롤타워 만큼 중요한 현장의 컨트롤타워를 명확히 하는 부분에서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의 지휘책임이 명확하지 않아 군, 민간, 공공기관이 통일적이고 유기적인 구조 활동을 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쳐 인명 피해가 급격히 커졌기 때문이다. 이후에 마련된 2015년 안전혁신 마스터플랜도 긴급구조 현장 지휘·명령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대책이지만 이후 육상은 소방, 해상은 해양경찰로 지휘책임을 명확히 구분했다.

이번 강원 산불 대응에는 명확한 지휘체계를 바탕으로 정문호 소방청장이 직접 지휘에 나서 큰 피해를 막았지만 국가적 소방력을 동원하는 방식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소방청이 지방자치단체 소방본부에 지원을 요청할 경우 시·도지사의 승인을 얻어야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전남소방본부를 비롯해 8개 시·도에 소방헬기 출동 명령이 내려졌지만 각 시·도별 여건이 달라 즉각적인 출동을 하지 못한 바 있다.


정문호 소방청장은 "전국 소방본부에 동원령을 내려도 의무사항은 아니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화 되면 대형재난에 더 신속하게 대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양기근 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도 "이번 산불과 관련해 소방청장이 일일이 각 시·도에 전화를 걸어 협조를 구했다"며 "정치적인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면 (협조가) 어려운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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