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에 불과한 재난 전담공무원, 전문성 확보 '발등의 불'
2019.04.15 17:10
수정 : 2019.04.15 17:10기사원문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25분. 진도군청이 전남도청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침몰 상황 보고서에 기입된 사건 발생 시각이다. 목포해경에 구조신호가 접수된 오전 8시58분보다 33분 빠르다. 아직도 어떤 사유로 서로 다른 발생 시간이 적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고 당일 팽목항에는 유가족, 공무원, 경찰관, 취재진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누구하나 현장을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다. 혼란 그 자체였다. 결국 팽목항 진입로는 차량들이 뒤엉켜 마비됐다. 한동안 구조자를 구급차로 이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 발생당시 지방자치단체의 재난대응 역량을 가늠해볼 수 있는 두 가지 장면이다.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전문가를 중심으로 자치단체의 재난대응역량을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995년 본격 시행된 지방자치제도가 성년을 맞았지만 안전분야에서는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정부는 2014년 11월 안전 총괄 부처인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고 자치단체 재난대응역량 강화에 나섰지만 지방과의 연계성이 떨어져 전국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고 지원하는 역할에 한계가 노출됐다. 문재인 정부 이후 국민안전처를 합병해 재탄생한 행정안전부는 자치단체 재난대응역량 강화에 나섰다. 자치단체 재난담당 부서·인원은 증가했지만 전문성 부족, 순환보직, 업무기피현상 등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자치단체 재난부서 인원은 '증가' 전문성은 '글쎄'
2015년 3월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안전관리 체계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목표로 마련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대응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재난안전업무 전담 실·국을 신설하고 담당 인력도 증원키로 했다.
이 결과 세월호 이전 2014년 자치단체 재난관리 인력은 총 4695명 수준이었으나 국민안전처 출범 이후인 2015년 5326명으로 13.4%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8년에는 6326명으로 18.7% 늘었다.
이중 재난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기 위해 2014년부터 채용한 방재안전직은 작년 말 기준 621명으로 전체 자치단체 재난관리 인원의 9%에 불과했다. 이들은 순환보직을 통해 잠시 재난관리부서를 거쳐가는 행정직 직원들과 달리 재난부서에서 장기 근무하며 전문성을 쌓는다.
방재안전직의 적은 숫자 만큼이나 근무 만족도는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 행안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방재안전직 181명 중 87%인 158명이 만족도가 낮다고 답했다. 만족도가 낮은 사유로는 업무량 과중(39%), 낮은 처우(23%) 등이었다. 이직을 고려한 응답자도 82%나 됐다.
이에 행안부는 방재안전직을 위한 수당을 신설했다. 소수직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승진 지연문제 해결을 위해 상위직급을 늘리고 매년 안정적으로 충원키로 했다.
방재안전직 이외 행정직 직원들 역시 재난 담당부서를 기피부서로 여기는 분위기다. 순환보직을 통해 2년 이내에 부서를 바꾸는 경우가 많아 전문성을 쌓기도 어렵다. 한 광역자치단체 재난담당 국장은 “대기 시간이 길고 힘든 업무로 장기근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근무평가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지만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털어놨다.
행안부 관계자는 “현재 자치단체별로 인센티브를 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행안부 차원에서 인센티브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재난현장 지휘 역량까지 갖춰야
자치단체의 재난대응 전문성이 아직 미흡한 수준이지만 재난발생 이후 수습·복구, 이재민 지원 등에서는 자치단체가 비교적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강원도 대형산불에 강원도청과 고성군, 속초시 등 피해지역 자치단체는 노인, 외국인 등 재난 취약계층을 신속히 대피시키고 이재민 보호시설별 전담공무원을 배치해 이재민 맞춤 지원에 나섰다. 가축진료반을 운영하고 영농지원계획도 수립해 농가지원에도 나섰다.
자치단체 차원에서 재난현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는 역량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뉴욕을 가장 잘 아는 뉴욕소방서장이 911테러현장을 마지막까지 지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찬권 국가위기관리학회장은 “선진국은 지방정부 스스로 재난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중앙정부에 지원 요청을 하지만 끝까지 재난 지휘를 책임진다. 중앙정부는 인력과 장비를 지원하는 역할”이라며 “현재 자치단체 상황에서는 미국과 같은 재난대응체계를 도입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스스로 역량을 키울 의지도 부족하다. 광역자치단체에 국가직 공무원 과장, 국장급을 내려보내 재난대응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