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님이 나갔습니다'…원치않는 단톡방, 조용히 나갈순 없나요?
2019.04.18 13:50
수정 : 2019.04.18 13:50기사원문
#1. 중소기업 부장인 김모씨(47)는 최근 고민이 많다. 주요 거래처와 관련업계 부장들이 함께하고 있는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한 부장이 여성의 신체가 그대로 드러난 사진이나 노출 영상들을 수시로 올리고 있어서다. 평소에도 따로 글을 올리지 않는 대화방이라 하루에도 수십번 '나가기'를 누르고 싶지만 강제로 초대돼 들어온 방인 데다가 혹시라도 '갑'인 거래처 눈밖에 날까봐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
#2. 직장인 박모씨(32)도 사내 동아리에서 억지로 초대된 단톡방에 포함돼 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운동 동아리에 포함됐지만 박씨는 단톡방에서 말 한 마디, 동아리 활동 한번 해본적 없다. 박씨는 "나가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OO님이 나갔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떠 괜히 민망해질까봐 나가지고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반응 안하고 있지만…나가고싶어"
최근 승리·정준영 연예인 단톡방 사건으로 음란물 유포 등 범죄에 조금만 동조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직장인들의 원치 않는 카톡 대화방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억지로 대화방에 초대됐지만 혹시라도 업무적인 불이익 등을 받을까 대화방을 나가는 것 조차 부담스럽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더 올려봐', '또 없냐' 등 적극적으로 불법촬영물을 보내달라고 부추겨서 실제로 영상을 받는 경우 형법상 교사 또는 방조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경우 처벌 규정은 없지만 침묵이 구체적으로 범죄행위에 조력했으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직장인 서모씨(31)는 "관련 기사를 하도 접하고 나니 꼭 불법 영상이 아니라도 노출 영상이나 사진이 올라오면 어떤 반응도 하지 않게 된다"면서도 "아예 받고싶지 않을때가 많지만 회사 단톡방 같은 경우 무작정 나올수도, 입바른 소리를 하기도 힘들어 곤란하다"고 토로했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스트레스는 단순히 신체의 특정부위 노출에 한정되지 않는다. 종교나 정치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글·사진을 올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직장인 이모씨도 "사람마다 정치적인 견해나 종교가 다를 수 있는데 일방적으로 내용을 올리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서로의 관계를 생각해 차마 대화방을 나가지는 않지만 언젠가부터는 아예 반응을 보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나가기' 알림, 없앨 수 있나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알바콜이 성인남녀 731명을 대상으로 공동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94%가 카카오톡 단체카톡방에 참여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평균 6.5개의 단톡방에 소속돼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82%는 '단톡방 스트레스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머무는게 의리(12%)', '나가기 눈치보임(11%)' 등 상당수가 나갈수 없는 상황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의 나가기 알림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나가기 알림이 뜨는 순간 그 대화방에 누가 참여하지 않고 있었는지를 모두가 알게 돼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카카오톡은 나가기 알림 기능에 대해선 현재 별다른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카카오톡 관계자는 "단체방이라는 자체가 수신자와 발신자가 공존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나가기 알림 기능은 양쪽을 모두 고려한 정책적 판단"이라며 "해당 기능을 없애거나 변경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