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일 극지연구소장 "남극에선 선진국 따라잡아… 이젠 북극서 영향력 키울 때"

      2019.04.18 18:15   수정 : 2019.04.18 18:15기사원문

영하 30~40도 혹한의 날씨와 제한된 공간에서 소수 인원이 함께 생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극지연구소에서 30년 넘게 극지연구에 몰두하고 수없이 남극기지에 다녀온 윤호일 소장은 "인간의 가장 낮은 밑바닥을 볼 수 있는 환경이며, 인간이 자연 앞에서 가장 겸손해지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남극과 북극은 아직도 많은 것들을 인간에게 보여주지 않았고, 새롭게 연구해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윤호일 소장은 지난 12일 인천 송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에서 남극과 북극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주요 성과 등을 밝혔다.



■선진국들이 북극을 노리는 이유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북극에 집중하는 이유는 지구 온난화라는 연구적 성격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지중해 30배 크기의 바닷속에 묻혀 있는 막대한 지하자원과 수산자원이 있다. 윤 소장은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아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바닷길이 열린 탓에 더욱 핫하다"고 설명했다.
유럽으로 가는 물류비의 40%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극지역은 대부분의 영해가 미국·러시아 등 북극권 8개 국가로 둘러싸여 독자적 연구활동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같은 비북극권 국가들은 그들과 우호적 신뢰를 얻은 후 개발이나 조업 때 공동협업하는 시스템으로 접근하는 전략을 펼쳐야 북극권에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윤 소장은 "극지연구소는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 아니니까 그런 과학적 활동을 통해서 그들과 신뢰를 먼저 구축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 등에 다양한 경제활동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극권 학자들과 공동연구활동에도 쇄빙연구선이 절실함을 느낀 연구소는 아라온호(7800t)보다 큰 1만1000t급 크기와 쇄빙능력도 강화해 1200억원 정도의 쇄빙선박 건조를 추진 중이다. 아라온호가 있지만 현재 남극에 있는 세종·장보고 기지에서 연구하기 바쁘다. 극지연구소는 지난해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 후 올해 재수하고 있다. 윤 소장은 "남극에서 30년 동안 선진국을 잘 따라잡았는데 북극에서도 격차를 줄이려면 쇄빙선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 이번 예타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수과학 너머 실용 추구

'지구온난화라는데 겨울이 왜 이렇게 추울까'라는 의문에서 시작, '커튼 이팩트'를 세계 최초로 규명한 게 극지연구소의 김백민 박사팀이다.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속 열을 가두고 있던 바다얼음이 사라져 북극해 상공으로 열이 방출된다. 방출된 열이 기압을 바꿔 시속 100㎞로 도는 제트기류를 느슨하게 만든다. 이 영향으로 컨튼콜처럼 어떤 때는 한반도 쪽으로, 미국 북동부 쪽으로 느슨해 한파와 폭설이 오는 것이다.

윤 소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3년간 30억원을 더 투자할 예정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그는 "예보를 할 수 있으면 국내 패딩업체나 아웃도어업체가 제품 만드는 시기를 조절해 기후경제에 의해 이윤을 더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서 순수과학이 기후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한 것이다.

극지연구소는 또 수십만년 동안 혹한에서 얼지 않고 살아온 남극 미세조류 유전자를 분석해 결빙 방지물질을 개발. 20억원에 산업체로 기술이전했다. 이 기술로 혈액을 장기보관할 길이 열렸다.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보자

윤 소장은 취임하면서 극지연구소가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내부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문호를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윤 소장은 "극지연구는 집단지성이 필요한 거대과학으로 다른 연구기관에 문호를 개방,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포함해 다른 연구원과 극지 실용화 연구과제를 4개 진항하기로 협약했다"고 말했다.

윤 소장이 당장의 실익을 떠나 연구소의 지속적 성공을 위한 결정이 하나 더 있다. 중국과 일본도 하지 못한 북극 원주민 교육지원 프로그램으로 매년 2명씩 최근 3년간 지속해 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연구소에서 체재비를 지원해 석·박사 과정을 밟게 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소장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 아군을 만든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극지연구소는 국제사회에서 '남극의 산타'라는 별명이 있다. 러시아 선박을 비롯해 올 초에는 조난당한 중국 극지팀을 구출했다.

윤 소장은 소장으로서 마지막까지 구조 결정을 내리기가 힘겨웠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구조 결정을 내리면 아라온호에 있던 연구원들은 1년 연구를 망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 내가 좀 더 큰 그림을 그렸다.
(그들을 외면한다면) 국제적으로 한국을 보는 시선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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