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연구로 모세혈관 주기운동 비밀 밝힌다
2019.04.24 12:00
수정 : 2019.04.24 12:00기사원문
#. 도로 위 운전자들은 본인이 가진 정보에 따라 덜 막히는 경로를 선택한다. 선택이 누적되면 한산하던 길이 막히고, 막히던 길은 점차 정체가 해소된다. 도로처럼 교차점과 선의 연결로 이뤄져 있는 집합을 네트워크, 교통체증처럼 반복되는 변동은 주기운동이라고 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단장 스티브 그래닉) 연구진은 모세혈관 속 적혈구의 주기운동을 설명하는 가설을 제시했다.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그룹리더(UNIST 자연과학부 특훈교수)와 올게르 시불스키 연구위원은 아주 얇고 긴 관에 흐르는 액체방울에서 네트워크 주기운동(oscillation)을 처음으로 발견, 모세혈관의 혈류 변동을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성공했다.
미세유체 시스템은 일명 ‘칩 위의 실험실(lab on a chip)’로 각광받는 분야다. 마이크로미터(μm) 크기 지름의 미세한 관 안에 액체방울 흐름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각종 시료를 처리할 수 있어 연구의 용이성과 장점이 크기 때문이다. 그간 단순한 경로로 이뤄진 미세유체 시스템은 수없이 많이 연구된 반면 길고 복잡한 네트워크를 흐르는 미세유체 연구는 이뤄진 적이 없었다.
연구진은 미세유체 시스템에 네트워크를 처음으로 적용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네트워크에 액체방울을 일정한 간격으로 흘려보냈고, 일정 시간이 경과하자 주기운동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실험과 시뮬레이션 모두에서 주기운동을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실험에 사용된 네트워크는 출발점에서 갈라지는 두 경로가 완전히 대칭을 이루기 때문에 액체방울들이 각 경로를 택할 확률은 50 대 50으로 같았다. 흘려보낸 액체방울들은 처음에는 두 경로로 고르게 흩어졌으나, 곧 편향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액체방울들이 열차처럼 줄을 지어 한 경로를 선택하면 다음 액체방울들은 다른 경로로 출발하는 주기운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림1 참조).
연구진은 균일한 흐름이 있던 네트워크에도 주기운동이 발생하는지 확인하고자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네트워크 내에 균일한 흐름을 만들기 위해, 액체방울을 쌍으로 생성해서 각 경로로 동시에 흩어지도록 했다. 양쪽 경로로 균일하게 보내지는 액체방울들에는 주기운동이 나타나지 않았다. 액체방울 생성장치를 바꿔 원래대로 하나씩 액체방울을 생성하자 수 분 뒤에 다시 주기운동이 나타났다. 이전의 네트워크 환경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주기운동이 생긴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번 실험은 미세유체 시스템을 이용해 모세혈관 주기운동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모세혈관 주기운동은 덴마크 의사 아우구스트 크로그가 발견해 192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으나 그 뒤로 100년 동안 정확한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실험에 쓰인 네트워크 속 액체방울과 마찬가지로, 지름은 6~7μm인 모세혈관에는 지름 6μm 적혈구가 관에 꼭 맞게 이동한다. 미세유체 네트워크 전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주기운동이 모세혈관 주기운동을 만들어낸다고 추정하는 이유다.
제1저자이자 교신저자인 올게르 시불스키 연구위원은 “미세유체 네트워크는 모세혈관, 잎맥 등 생명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여기에서 발생하는 주기운동을 이해하는 것은 모세혈관을 물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 IF=22.727, DOI: 10.1038/s41567-019-0486-8)에 4월 23일 화요일 새벽 0시(한국시간)에 게재됐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