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단 호크 명연기 망친 번역, 그리고 수입배급사

      2019.04.27 08:58   수정 : 2019.05.18 04:11기사원문

외화 한 편에서 번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사람마다 내놓는 답이 달라지겠지만 대체로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해당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사와 각종 자막 등을 번역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때로 지나친 의역과 오역이 영화의 감상을 망쳤다며 팬들 사이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봐도 번역의 중요성엔 이견이 없다.



그런데 가끔 번역가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영화를 만난다. 크레딧은 물론 온갖 자료를 뒤져도 번역가가 누구인지 정보를 알 수 없다.
처음부터 2차 시장을 노려 대충 만든 영화가 아니라 해외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는 작품인데도 그렇다. 이런 경우엔 불안감을 피할 수 없다. 엉망진창 이뤄진 번역이 영화의 감상을 망가뜨릴 것 같은 위기감이다. 이런 불안은 자주 현실이 된다.

이달 개봉한 <퍼스트 리폼드>가 그런 영화다.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 마틴 스콜세지 대표작의 각본을 써 명성을 얻은 폴 슈레이더의 연출작으로 해외 평단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김혜리·이동진 등 유명 평론가들이 별 다섯 만점에 네 개 반을 선사한 드문 영화로 기록됐다.

문제는 <퍼스트 리폼드>가 관객 일반에게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건보다 개인의 내면에 깊이 다가서길 즐기는 폴 슈레이더의 접근법이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탓도 있겠으나, 번역의 문제점이 큰 몫을 했다. 특히 영화 전체의 감상을 달리할 수 있는 중대한 대목에서 오류를 범해 번역에 의존하는 상당수 관객들이 <퍼스트 리폼드>의 참 맛을 알기 어렵게 됐다.

어떤 번역은 영화 전체의 가치를 추락시킨다



설명을 위해 충분한 정보가 필요할 듯하다. 지금부터 적는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는 감안하길 바란다.

주인공은 관광지로 자리 잡은 교회 '퍼스트 리폼드'의 목사 언스트 톨러(에단 호크 분)다. 그가 맡은 퍼스트 리폼드는 허울뿐인 교회로, 신도들이 찾아와 예배를 드리는 본연의 기능보다 관광지로의 역할이 더욱 크다. 자연히 톨러의 역할도 다른 목사들과는 달리 관광객들에게 역사적 명소를 설명하는 가이드에 가깝다.

톨러는 쓸쓸한 인간이다. 영화는 톨러의 입을 통해 그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사는 이유를 드러내는데 다음과 같다. 아버지와 자신이 군종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톨러는 제 아들에게도 군종으로 복무할 것을 권했다. 그런데 이라크전이 발발, 아들이 낯선 땅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 일로 아내와도 갈라선 톨러는 퍼스트 리폼드에서 남은 인생을 갉아먹으며 산다.

그런 톨러의 삶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메리(아만다 사이프리드 분)라는 여성으로, 제 남편이 정서적으로 불안하다며 톨러에게 상담을 청한다. 톨러는 메리에게 퍼스트 리폼드의 본청 격인 큰 교회 '풍요로운 삶'의 프로그램을 권하지만 메리의 남편 마이클(필립 에팅거 분)은 풍요로운 삶이 지나치게 상업적이란 이유로 톨러에게 상담받기를 고집한다.

이후 영화는 마이클이 끝내 자살을 택하고, 톨러가 그가 생전에 가졌던 뜻에 공감하며, 메리와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을 차근히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톨러는 풍요로운 삶의 목사 제퍼스(세드릭 더 엔터테이너 분)의 뜻을 거스르게 되는데, 그가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본연의 목적 대신 이익을 좇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톨러는 마이클이 꿈꿨으나 미처 하지 못한 선택을 대신 하려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 메리가 톨러를 찾아오며 계획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 바로 이 장면, 톨러를 찾은 메리가 톨러에게 다가가 그를 안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영화 전체의 감흥을 떨어뜨리는 번역 상의 문제가 등장한다.

이때 메리는 톨러에게 다가서며 "언스트 Ernst"라고 그를 부른다. 언스트는 톨러의 이름으로, 신도가 목사의 이름을 직접 부른다는 점에서 관객은 상당히 낯선 감흥을 받게 된다. 메리를 포함해 이전까지 톨러를 부른 모두가 그를 '목사 Reverend'로 칭한 건 물론이다.

이 장면은 메리가 톨러를 목사가 아닌 인간으로 바라본 첫 장면이란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목사와 신도', '상담자와 상담받던 이의 아내'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한 첫 장면으로, 경계를 넘어 손을 내민 메리 덕택에 무너져가던 톨러가 구원을 받는 순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극장에서 <퍼스트 리폼드>를 본 관객은 이러한 감흥을 받을 수 없다. 수입·배급사인 올스타엔터테인먼트가 이 장면에서 메리의 대사를 전과 마찬가지로 "목사님"이라 적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관객은 이 장면과 대사에 담긴 의미를 짐작할 수 없다.

번역 못지 않게 실망스러운 수입배급사의 태도


번역가 대신 수입·배급사인 올스타엔터테인먼트에 책임을 돌리는 건 이 회사가 번역가의 이름과, 그 이름을 크레딧에 적지 않은 이유 등에 대한 수긍할 수 있는 답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퍼스트 리폼드> 이전에 어떤 영화를 배급했는지 알 수 없는 이 회사는 다만 '번역가가 전에도 영화번역 작업을 한 경력은 있다'는 답만 내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번역가가 누구인지, 어떤 경력이 있는지, 왜 이 같은 번역을 했는지 등은 끝내 알 수 없게 되었다.

영화는 이밖에도 몇 가지 오역을 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장실에서 물이 새는 문제와 관련해 톨러가 교회 직원과 나눈 대화의 번역이다. 직원이 풍요로운 삶의 지원을 받아 사람을 불러 고치자고 제안하자 톨러는 직접 수리를 다시 해보겠다고 말한다. 이때 톨러의 대사는 "Have another crack at it"으로, 우리말로 하면 "한 번 더 해볼게" 정도가 된다. 그런데 영화는 이를 '변기에 금이 갔다'고 표현한다.

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오역은 처음 언급한 장면에 비해서는 중요하지 않지만, 번역가의 자질을 짐작하기엔 충분하다. 그리고 예상컨대 올스타엔터테인먼트가 번역가를 크레딧에 올리지 않은 것, 몇 차례 통화에서 끝내 공개하지 않은 것 모두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인생영화가 될 수 있었을 괜찮은 작품이 번역의 실패로 크게 빛을 잃었다. 그런데 크레딧엔 번역가의 이름이 없다. 영화사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관객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많은 이들이 영화산업 종사자들은 예술을 아끼는 사람들일 것이라 믿는다. 예술을 아낀다는 표현 안에는 영화산업 종사자 각각이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할 것이란 기대가 포함된다.
눈앞의 이득을 넘어 영화예술과 그것이 지닌 가능성을 알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올스타엔터테인먼트와 이 회사가 영화를 취급하는 방식에선 영화예술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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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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