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종 인사혁신처장 "WTO 승소 이끈 정과장처럼… 행정도 아이디어가 생명"

      2019.04.28 16:39   수정 : 2019.04.28 16:39기사원문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은 자타공인 인사전문가다. 공직 생활 중 30년 동안 인사분야 업무만 담당할 정도로 누구보다 공직 내 분위기에 밝다. 황 처장이 최근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정부 인사시스템의 후진성이다.

민간에서 인사분야는 이미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정부는 아직도 주먹구구식 인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황 처장의 설명이다.
그는 "정부 부처 내 인사 결정과정을 보면 직위에 적합하느냐의 문제보다 개인적인 희망이 더 우선시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공무원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민간 대기업은 지난해 직원 교육·개발에 1인당 77만원을 투자했다. 국가공무원의 경우 대기업의 57%인 44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민이 공무원에게 느끼는 불신도 그에게는 무겁게 다가온다. '공직불신, 무사안일, 관례답습, 보신주의, 복지부동' 한두 번 읊어본 것이 아닌 듯 황 처장은 이 다섯 단어를 숨도 안 쉬고 순식간에 뱉어냈다. 그는 "공무원들은 이같은 사회적 비난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며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은 '적극행정'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은 그동안 공직에서 경험했던 인사업무 노하우와 향후 국가 비전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대담=김태경 정책사회부장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과제는 무엇인가.

▲단연 '적극행정'이다. 최근 행정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사회 곳곳에서 법·제도와 현장 간의 괴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에 공무원들은 단순한 법 집행자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적극행정이라고 하면 국가적 사업과 같은 거창한 과제를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국민편익, 행정효율 등 공공이익을 위해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노력 이상으로 업무를 수행하거나 새로운 시각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라면 무엇이든 적극행정이 될 수 있다. 예컨대 경찰청이 국제운전면허증은 파출소에서 발급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국민편의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도록 개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적극행정 문화 정착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적극행정이 일시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공직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적극행정을 지원하고 보호하기 위한 규정들을 대통령령으로 제도화할 계획이다. 특히 인센티브 제도를 강화할 계획이다. 인센티브를 재량사항에서 의무사항으로 바꾸고 해당 공무원이 원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할 예정이다. 승진, 승급, 희망보직 인사이동, 해외 연수훈련 등 인사 제도상 동원 가능한 모든 방안을 활용할 계획이다. '인정감 부여'도 효과적인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대통령, 총리께서 이번 일본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수입 금지조치를 둘러싼 세계무역기구(WTO) 최종 판정에서 한국의 승소를 이끌어낸 공무원들을 격려하고 함께 식사자리를 가졌다. 동기부여 이론에 따르면 경제적 보상보다 이같은 인정감의 부여가 더 큰 의미를 갖기도 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적극행정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번 WTO 승소가 인상 깊었다. 승소를 이끈 산업부 정하늘 과장은 민간 출신이다.

▲그렇다. 정하늘 과장은 국제통상전문 변호사로 지난해 4월 개방형직위 공모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공직사회에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수혈해 우수한 성과를 낸 성공 사례다. 민간 전문가들이 공직에 더 많이 유입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기존 공무원을 자극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WTO 승소는 공직사회에 많은 의미를 던지고 있다. 현재 개방형직위 제도를 통해 전체 445개 개방형직위 중 43%인 193개 직위에 민간경력자들이 일하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향후 민간인만을 임용하는 경력개방형 직위 제도와 민간 최고 인재를 공직에 영입하는 민간 스카우트 제도를 활용해 우수 인재의 공직유입을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2017년부터는 특정 전문분야에서만 평생 근무하면서 숙련된 명장 공무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전문직공무원 제도'도 도입했다. 국제통상·재난안전 분야 등 6개 부처에서 운영 중이며 올해 식품안전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를 중심으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할 생각은 없나.

▲2009년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실시하고 6년만인 2015년 한번 더 손을 댔다. 우리처럼 연금개혁을 단 기간에 여러번 하는 나라는 없다. 이미 연금개혁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공무원연금 충당부채는 실질적인 국가부채가 아니다. 연금 수입 부분도 고려하지 않은 금액이다. 공무원 연금의 기여율은 수입의 9%다. 사용자인 국가부담금 9%를 더하면 18%다. 국민연금은 국민과 기업이 각각 소득의 4.5%씩, 총 9%를 부담한다. 두 배 차이가 난다. 국민연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입이 있다. 이 수입으로 지출하고 부족한 부분을 국가가 부담한다. 정확한 추계가 아니다. '부과주의'인 현 공무원연금 체계와도 동떨어진 개념이다. 충당부채는 정부가 파산할 경우 지급해야하는 비용을 산출하고 만일을 대비해 국가가 적립해야 하는 금액이다. 미국과 같은 적립식 연금의 경우 충당부채 개념이 의미가 있다. 후 세대가 앞 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간 부양방식으로 운영되는 한국 공무원연금과는 제도적으로 맞지 않다.


―공직이 민간에 비해 교육여건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다.

▲동의한다. 한 나라의 행정 서비스 수준은 공무원 역량을 뛰어넘을 수 없다. 공무원이 끊임없이 자기 직무에 대해 학습하고 전문역량을 쌓을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중요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2018년 민간 대기업은 1인당 77만원을 직원교육·개발에 투자했지만 국가공무원 1인당 인재개발 예산은 대기업의 57%인 44만원에 불과하다. 과장급 직원들에게 '5급 초임 교육 받은 이후 제대로 된 교육 받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대부분 유학 다녀온 것을 제외하곤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앞으로 민간수준으로 인재개발을 위한 투자를 높일 계획이다. 현행 공무원 교육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혁신방안도 마련한다. 집합교육 중심 체계를 현장·토론형 교육으로 개편하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동료의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는 직장 내 교육도 확대한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쓰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가장 고민을 많이 하는 지점이다. 현재 공무원 인사는 전략적인 인적자원 관리보다 단순운영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조직의 성과 창출을 위한 인사보다는 개인의 희망이나 보직관리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데 머물러 있다. '국민을 위한 인사'가 아니라 '개인을 위한 인사'가 이뤄지는 셈이다. 최근 중국대사관 근무를 지원하는 외교관이 감소한다는 뉴스를 봤다. 개인의 희망에 근거한 인사운영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처 장관이 전략적으로 인사를 배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사는 조직의 성과목표 달성을 위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핵심 전략 수단이다. 민간에서 인사분야는 이미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중견기업도 마찬가지다. 인사가 전문화되지 않는 조직은 정부밖에 없다.

―부처별 인사관리의 전문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부처별로 조직 규모와 인적 구성, 업무 형태가 다양하지만 현행 인사제도는 전 부처 대상으로 동일한 원칙과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당면한 정책환경이나 사회·과학기술 변화에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운 실정이다. 각 부처에 인사전문가와 인사전담조직이 부족한 현실도 영향이 크다. 대다수 부처는 별도의 인사조직을 두지 않고 운영지원과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한다. 인사혁신처가 만든 제도들이 현장에서 굴절·왜곡되고 제도의 근본 취지가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다.
현재 인사제도의 기본 취지를 살리면서 부처 소속 장관이 부처 사정에 맞게 맞춤형 인사관리를 할 수 있도록 '부처 자율형 인사관리' 정착을 위해 힘쓸 계획이다. 소속 장관의 책임 하에 적재·적소·적시 인사를 위한 자율성을 부여하면 개별 부처의 특성이 반영된 채용·보직·승진·성과관리 등이 가능해진다.
기관의 성과 향상은 물론 정부의 경쟁력이 보다 향상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리=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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