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더 대접받는 와인세계

      2019.05.02 15:44   수정 : 2019.05.02 15:44기사원문


2007년 말 온라인 경매사이트 이베이에서 프랑스 보르도를 대표하는 와인 '페트뤼스(Petrus)' 한 병이 600유로(78만원)에 팔렸습니다. 와인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이 가격이 믿을 수 없이 저렴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이 가격은 빈 병 가격이었습니다.

프랑스 포므롤의 명품 와인인 페트뤼스는 빈티지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한 병에 1000만원 안팎에 팔리는 보르도 최고가 와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최고가 와인이라 하더라도 누가 빈 병을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살까 생각되지만 가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귀한 경매물건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네 꽁띠(Romanee Conti)나 페트뤼스, 샤또 무똥 로췰드(Chateau Mouton Rothschild) 등 프랑스 최고가 와인들의 오래된 빈티지 빈병은 최소 50만원 안팎의 금액에도 거래가 활발히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비싸고 오래된 빈티지일수록 가짜 와인일 확률 높아
와인 시장만큼 가짜가 판치는 곳도 없을듯 합니다. 한 병에 100만원이 넘는 고가 와인일수록, 오래된 빈티지일수록 가짜 와인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와인전문가 조정용씨는 "최고가 와인의 가장 큰 라이벌은 바로 가짜 와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짜 와인은 병에 든 와인을 그대로 두고 라벨을 바꿔 붙이거나, 아니면 병과 라벨을 그대로 두고 다른 와인으로 바꿔 채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앞의 경우는 해당 와인을 사서 빈티지를 바꾸는 것인데 여기서도 엄청난 이익을 챙길수가 있습니다. 와인 어플 '비비노'에 따르면 샤또 무똥 로췰드의 현지에서 거래 가격은 2010년이 115만원인데 비해 2011년은 67만원으로 가격이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시장에서는 이보다 더 큰 차이가 납니다. 뒤의 경우처럼 아예 다른 와인을 채워넣는 것으로 이보다 훨씬 큰 이익을 챙길수 있습니다.



■부자들의 속물근성 악용하는 가짜와인 제조업자
그런데 이런 가짜 와인이 왜 자꾸 만들어질까요. 가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은 가짜 와인을 만들어도 일단 유통이 시작되면 이를 적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최고급 와인을 소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속물 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철저하게 이용합니다.

사실, 초고가 와인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나 혹은 자신의 고귀한 취미를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해당 와인을 잘 개봉하려 하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병에 100만원이 넘는 샤또 라피트 로췰드를 150년 동안의 빈티지를 다 모으는게 목표인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의 경우 어느 빈티지 한병을 마시게 되면 다시는 그 빈티지를 구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절대 코르크를 열지 않는다는 것이죠. 따라서 큰 돈을 주고 어렵게 사들인 와인이 가짜 와인이라 하더라도 와인셀러에 고히 모셔져 있으니 발각될 일이 없다는 것이죠.

■병을 여는 순간 가짜 와인 증거는 사라져
그리고 아무리 가짜 와인이라 하더라도 병에 담겨 유통되는 순간부터 발각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해당 와인이 의심스러워 병을 따는 순간 그 증거는 사라지기 때문이죠. 일부 전문가들의 말도 안되는 이상한 견해도 가짜 와인을 식별하기 더 힘들게 만들죠. 해당 와인이 가짜 와인일 가능성이 있는 데도 맛이 이상하면 "이 와인은 여행의 충격을 받고 있어 제 맛을 내지 못하고 있다", "와인의 운송 과정에서 흔들림이 있어 제 맛이 나지 않고 있으니 한 두달 와인을 안정시킨 다음 마시는게 좋다", "와인은 살아있는 아주 민감하고 살아있는 조직이다. 따라서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맛이 변하게 된다느니" 하는 말을 합니다.



■초고가 와인 맛 제대로 구별하는 사람 드물어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초고가 와인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 와인의 맛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한 병에 1000만원이 넘는 페트뤼스, 로마네 꽁띠는 물론이고 족히 100만원을 웃도는 보르도 특급 와인을 자주 마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와인을 자주 마시는 사람은 정말 돈이 많은 재벌가의 자손이 아닌 이상 이미 가산이 많이 탕진돼 더 이상 비싼 와인을 사먹을 여력이 없을 겁니다. 또 재벌 집안일수록 오히려 검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고가 와인을 많이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초고가 와인의 경우 해당 빈티지마다 맛이 미묘하게 다르고 아주 오래된 빈티지의 경우 보관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내기도 합니다. 하물며 이런 초고가 와인을 자주 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가짜 와인을 먹어도 이를 구별해 낸다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평론가인 로버트 파커가 1921년산 페트뤼스 매그넘을 접하고 100점을 줬는데 해당 와이너리에서는 1921년 페트뤼스 매그넘을 생산한 적이 없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0년에 벌어진 일 입니다.



■가짜 와인 중국, 한국 등 아시아서 대거 유통
또 2013년에는 미국에서 전 세계 와인 업계를 뒤흔든 희대의 사기행각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로마네 꽁띠 1947년산에 집착해 '닥터 꽁띠' 또는 '닥터 47'로 불리는 와인업계의 큰 손 루디 쿠르니아완(Rudy Kurniawan)의 집에서 로마네 꽁띠, 샤또 라피트 로췰드, 페트뤼스 등의 와인 라벨 수천장과 위조 와인 제조에 쓰인 빈병과 코르크 등이 발견돼 충격을 줬습니다.
그는 2006년에만 1만2000병의 와인을 팔았다고 합니다. 와인 전문가들은 쿠니아완의 와인들이 대부분 아시아, 그 중에서도 속물 근성이 많은 중국과 한국 등지에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초고가 와인을 동경하나요. 한번쯤 새겨 볼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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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부르고뉴 와인은 왜 더 비쌀까'가 이어집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부동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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