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달라질까? 태국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

      2019.05.04 05:59   수정 : 2019.05.04 05:59기사원문


지난 2016년 10월에 부왕의 타계 이후 3년간 대관식을 미뤄온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이 오랜 기다림 끝에 4일부로 정식 대관식을 치른다. 태국 안팎에서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평생을 외국에서 보낸 늙은 왕자가, 산업화의 역군이며 '대왕'으로 불리는 아버지의 권위와 치적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우려가 많다. 그는 이러한 걱정에 기름을 붓듯이 지난 1일 자신보다 26살 어린 신부와 4번째 결혼식을 치렀다.

과연 그가 5년만의 민정이양으로 혼란해진 태국을 다스릴 능력이 있는 지는 이제부터 드러날 예정이다.

지난 1952년 7월 28일에 방콕 두싯 궁전에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라마 9세)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올해 한국 나이로 68세가 됐다.
와치랄롱꼰은 13세까지 궁궐 안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곧장 영국의 사립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그는 영국 씨포드와 서머싯에서 고위층 자제들을 가르치는 사립학교 2곳을 거친 뒤 1970년 8월에 호주로 건너갔다. 이어 시드니 소재 명문 사립학교인 킹스스쿨에 들어가 군사 교육과정을 마치며 중·고등 교육을 마감했다.

와치랄롱꼰은 다른 남성 왕족들과 마찬가지로 이후 군사 교육을 받았다. 그는 1972년에 호주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76년에 중위 계급으로 졸업했고 그 사이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에서 교양 분야의 학사 학위도 땄다. 와치랄롱꼰은 이후 미국과 영국, 호주에서 추가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미국에서는 헬리콥터 조종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1978년에 왕실근위대장으로 임명됐고 같은 해 11월에 태국 불교도들의 전통에 따라 보름동안 승려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행적은 세상에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아둔야뎃 국왕은 슬하에 왕자 하나와 공주 셋을 뒀고 유일한 왕자였던 와치랄롱꼰이 1972년 12월에 왕세자로 책봉됐다. 그는 이후 재단을 조직해 병원 건설 및 농업, 교육 개선 사업을 벌이긴 했지만 누나인 우본랏 라차깐야 공주처럼 언론에 자주 모습을 비추지도 않았고, 첫째 동생인 마하 차끄리 시린톤 공주처럼 국정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특히 시린톤 공주는 아버지를 도와 국가적인 산업 인프라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로 꼽혔으나 아둔야뎃 국왕은 왕위 계승에 성별제한이 철폐됐음에도 불구하고 왕세자를 바꾸지 않았다. 와치랄롱꼰은 가끔씩 왕실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주로 독일 바이에른주의 스타른베르거 호숫가에 위치한 자택에서 주로 지냈다. 미국에서 비행에 흥미를 느낀 그는 보잉 737 여객기를 매입해 직접 운전하며 태국과 유럽을 오가기도 했다.

이렇듯 은둔생활을 하던 와치랄롱꼰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의 사생활이었다. 그는 살면서 4번의 결혼을 했고 자식만 7명이다. 모친인 시끼릿 왕비는 1982년 인터뷰에서 아들이 유럽에서 탕아로 유명한 가상인물인 '돈 후안(돈 조반니)'과 약간 비슷하다며 "아들은 좋은 학생이고 착하지만 여성들이 그에게 관심이 많고 그는 더욱 여성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와치랄롱꼰은 25세 되던 해 자신의 외사촌인 솜사와리 키티야카라 공주와 결혼해 딸 하나를 가졌으나 약 1년 만에 바람을 펴 배우 출신인 유와디아와 사귀었다. 와치랄롱꼰은 1993년에서야 정식으로 본처와 이혼했고 1994년에 유와디아와 재혼했다. 그 사이 4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얻었다. 와치랄롱꼰은 정식 결혼 후 2년 만에 유와디아와 파혼하고 4명의 아들들과 의절했다. 그는 2001년에 비서였던 스리라스미와 결혼해 아들 1명을 얻었고 그나마 2014년까지 가장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나 와치랄롱꼰은 2014년에 스리라스미와 친인척들이 자신의 이름을 팔아 비리를 저질렀다며 스리라스미의 왕세자비 자격을 박탈하고 이혼했다. 와치랄롱꼰은 같은 해 과거 타이항공을 드나들며 알게 된 승무원 출신의 수티다 와치랄롱꼰 나 아유타야를 왕실 근위대장에 임명했고 지난 1일 근위대장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를 따라다니는 추문은 이 뿐만이 아니다. 와치랄롱꼰은 2006년 쿠데타로 실각해 망명중인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대준 돈으로 불법 도박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위키리크스를 통해 스리라스미 왕세자비를 나체로 만들어 파티를 여는 동영상이 유출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애완견 푸푸가 죽었을 때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구설수에 올랐고 1992년에는 자신이 소유한 나이트클럽 등이 왕가의 연줄로 불법영업을 했다는 소문이 돌자 기자를 불러 직접 해명한 적도 있다. 또한 와치랄롱꼰은 2017년에 독일에서 배꼽티를 입고 의문의 여성과 함께 쇼핑하는 동영상이 페이스북에 유포되어 세계적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동영상 촬영 당시 그의 나이는 64세였다.

원래 탁신 세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던 와치랄롱꼰은 부왕 사후 태국에서 머물면서 2014년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을 이끌고 있는 프라윳 찬오차 총리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군부가 지지기반이 부실한 와치랄롱꼰을 끌어들여 권력 유지에 이용하려 한다는 추측까지 나돌 정도다. 와치랄롱꼰은 올해 우본랏 공주가 민정이양을 위한 총선에서 탁신 계열 정당의 총리 후보로 나서자 칙령으로 이를 막았다.

이처럼 갖가지 악평에 시달리는 와치랄롱꼰은 4~6일간의 대관식을 거쳐 라마 10세로, 새로운 태국의 왕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왕이 된다.
태국 왕실의 재산은 약 300억~400억달러(약 35조~46조원) 사이로 추정된다. 2017년에 직접 군부에 개헌을 요구해 국왕 권한을 확대한 그가 정말 태국 안팎의 우려대로 군부에 휘둘릴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대관식 이후에 진행될 태국 정부의 연정 구성에 그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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