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죽고 3년, 어미는 아직 싸운다

      2019.05.11 09:59   수정 : 2019.05.11 12:12기사원문
스물다섯, 군을 전역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새파란 젊음이 졌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찾은 성형외과,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3.5L의 피가 몸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아들을 잃은 어미가 500번 넘게 돌려봤다는 CCTV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담겨있었다.

누워있는 아들을 두고 집도의는 자리를 비웠고 간호조무사는 화장을 고쳤다.

그로부터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 시간이 평범했던 어미를 투사로 만들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병원과의 싸움은 오는 28일 민사재판 선고를 앞두고 있다. 2년여에 걸친 경찰의 수사 이후에도 검찰이 8개월째 기소조차 않고 있는 가운데 이뤄질 판결이다. 아들의 이름은 故권대희, 어머니는 이나금씨다.

이씨와의 인터뷰는 우연한 계기에서 출발했다. 두 달 여 전 취재를 위해 국회 앞을 지나는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가 들고 있는 판에는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해야 합니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개인사정으로 기자생활을 그만뒀던 2017년 어느 날인가도 나는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같은 이야기를 목 놓아 외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인터뷰 프로젝트 ‘매직스피커’를 기획한 것도, 첫 대상자로 이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것도 그래서다. 때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몹시 소중한 이야기가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은 채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피해자가 꼭 듣는 말 "법대로 하세요"


이나금씨는 아들의 죽음 이후 병원이 보인 태도 때문에 처음 소송을 결심했다고 말한다.

“CCTV 영상에서 의사들이 노력했던 게 보이면 이렇게 안 해요. (수술 중에 의료진이 아들을) 방치했어요. 그런데도 (병원이) 오리발을 내미니까 ‘좋다, 해보자’ 한 거죠. 영상을 여는 게 싫어서 소송을 안 가려고 세 번이나 만났어요. 그런데 (원장이) 감방에 갈 일이 있다면 가겠다고... 감방이란 말을 다섯 번이나 했어요. 다섯 번을... 그래서 소송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왕 시작됐으니 파고들어서 ‘끝까지 가보자’ 한 거예요. 정말 네가 나한테 그만큼 당당한지를, 너희가 억울하다고 하니 너희가 억울한지 내가 억울한지 가보자고 한 거죠.”

지난시간 이씨가 겪은 일련의 사건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서초구 유명 성형외과에서 동시에 여러 개의 수술실을 열어 수술을 진행했고, 자격 없는 사람이 의료행위를 했으며, 사고 이후 일부 의료진이 유가족에게 과실을 인정하는 취지로 말을 했다가 입장을 바꿨다. 병원은 피해자가 후송된 대학병원이 응급조치를 잘못해서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도대체 어째서 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씨는 제도적 문제를 지적한다.

“유가족들을 만나보면 공통적으로 (병원 측에게) ‘법대로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 생각해보면 이게 법이 잘못됐다는 뜻이죠. 법으로 가면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이런 말이 나오는 거예요. 전 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의료사고 피해자랑 병원 사이에 정보비대칭이 심하죠. 유치원생한테 박사논문 풀어서 소송하라는 꼴이에요. 그러면 재판부에서 판사가 어느 정도 약자의 입장을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죠. 그러니 기고만장할 수밖에요.”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소송은 고난의 길이다. 상대인 병원이 힘과 정보 면에서 압도적인 상황임에도 모든 입증책임을 원고 측이 져야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고통도 큰데 승산이 높지 않은 소송에 삶 전체를 들이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영업하는 병원을 바라보면 이길 수 있을까 자포자기하는 마음까지 든다.

의료사고 여부를 다투는 많은 사건에서 병원은 유가족 앞에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인정했다 하더라도 쉽게 입장을 바꾼다. 녹취가 유일한 증거인 상황에서 당사자가 녹취내용을 번복하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게 한국의 법이기에, 유가족은 의료사고를 입증할 별도의 증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런 증거를 대체 어디에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의료사고를 다투는 소송에서 원고 측 완전승소율이 1% 내외에 그치는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CCTV 없었다면 포기했을 것"


이씨는 지금껏 소송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로 녹취 외에 확실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술실 CCTV 영상과 의무기록지가 그것이다.

“사고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간호실장에게 경위서를 적어오라 했고, CCTV 영상도 받아냈어요. 그때만 해도 아이가 죽는다고는 생각을 안 해서 그럴 수 있었죠. 사고가 났으니 준비는 해야겠다 싶어서 초창기에 증거확보부터 했고, 이후엔 아이를 살리기 위해 거기에만 매달렸어요. 생각해보면 당시엔 병원 측에서도 사망까지는 생각을 안 한 것 같아요. 자료를 받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죠.”

문제는 이후에 발생한다. 과실을 인정했던 병원 관계자가 입장을 바꿨고 병원과 법적 싸움에 돌입하게된 것이다.

“수술실에 CCTV가 없었다면 포기해야 했을 거예요. 처음엔 (잘못을 인정하는 관계자의) 녹취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보니 안 되겠더라고요. (다른 유가족들이) 녹취가 있는데도 재판에 계속 지는데, 의사들이 말을 바꿔 아니라고 하면 그냥 끝이더라고요. CCTV가 없는데 의료사고가 나면 백전백패라고 생각해요.”

이씨는 CCTV 영상을 통해 ▲집도의가 수술할 때 과다출혈 발생 ▲수술 도중 집도의가 자리를 비우고 약속되지 않은 의료진이 대리수술 ▲간호조무사의 무면허 의료행위 ▲지혈이 되지 않은 채 환자를 장시간 방치 ▲간호조무사가 수술실에서 휴대폰을 만지고 눈 화장 ▲수혈 없이 대학병원으로 환자 이송 등의 사실을 발견해냈다. 나아가 CCTV 영상을 의무기록지 및 관계자 녹취내용과 비교해, 병원 측이 제출한 의무기록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까지 따져볼 수 있게 됐다.

이처럼 CCTV를 통해 큰 도움을 받은 이씨는 다른 의료사고 피해자를 위해 수술실 CCTV 법제화를 위한 활동에도 발 벗고 나섰다.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 작업은 일명 ‘권대희법’으로까지 불릴 정도다.

“1인 시위를 하면 할수록 수술실 CCTV 법제화가 우리 아이가 세상에 남긴 유증(有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이가) 49일 동안 뇌사상태로 있을 때 증거를 다 잡을 수 있었고, 제가 컴퓨터도 할 수 있어서 녹취를 다 풀고 다른 증거랑 비교해가며 상황을 헤쳐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요. 아이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하늘의 도움일까. 지난 수 년 간의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던 국회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던 10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씨는 이 소식을 전하며 “너무 감사하고 감사해 눈물이 난다”고 심정을 표현했다.

■우는 어머니 위에 자식 죽은 병원 광고가


한편 사고를 일으킨 병원은 현재도 활발하게 광고를 하고 있는 상태다. 해당 병원 사이트엔 ‘CCTV 공개’ ‘하루 수술 4명만’ ‘성형외과 최고명품브랜드 선정’ 등의 광고문구가 내걸려 있다. 이씨는 이 병원의 홍보활동에 소름이 끼친다고 말한다.

“의료법을 위반하고 사고가 난 병원인데 이렇게 광고하고 있어요. CCTV를 공개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병원이고, 하루에 4명만 수술한다고요. 우리 대희가 사고난 날도 4명 수술했어요. 이런다고 안 죽는 게 아니란 거죠. 더 황당한 건 우리 아이가 ‘14년 무사고 자부심’이란 광고를 보고 가서 죽었는데, 계속 그 문구를 쓰더라고요. 2017년 2018년 광고에도 그대로 쓰는 거예요. 그래서 대희 형이 병원에 찾아갔어요. 여기서 사고가 났는데 왜 이렇게 하느냐고 했더니 원장이 바로 경찰을 부르라고 했대요. 그래서 아들이 ‘내가 부를게’ 하고 경찰을 불렀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광고를 안 내렸어요. 저는 저대로 보건복지부에 신고를 했었고 2017년에 영업정지 처분(벌금 100만원, 영업정지 3월)을 받았어요. 그런데 2018년에 또 광고를 그대로 하고 그래서 또 신고를 했죠. 지금 검찰에 기소돼 있어요. 거짓된 허위광고로요. 저는 정말 이 병원이 소름이 끼치고 이해가 안 가요.”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광고를 이씨는 지금도 수시로 마주한다. 모바일 광고를 통해서다. 이씨는 기자에게 광고가 뜬 휴대폰 화면을 내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예를 들어 제가 권대희법을 검색하면 광고창이 계속 뜨더라고요. 정말 아이러니한 건 100일 동안의 1인 시위를 끝내고 검색을 하니까 뉴스창 밑에선 내가 우는 사진이 나오고 위에는 이 병원 광고가 뜬 거예요. 기절초풍할 일이죠.”

현재 이씨는 이달 선고가 나는 민사소송에 온 정신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의료사고 역사상 드물 만큼 많은 증거를 확보했음에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도개선 없이는 다른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의료사고 피해자를 만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너무나 슬프고 속상하고 힘들어요. 그 사람들이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하면 몇 천 만원 구상권 청구가 들어오는데 자식 잃고 집 날리고 하는 거죠. 너무나 속상해요. 그래서 더욱 CCTV 법제화가 돼야 한다고 부르짖는 거예요. 내가 이게 있어서 이만큼 밝힐 수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어야한다고요.”

[이디스 워튼은 '빛을 퍼뜨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촛불이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촛불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매직스피커는 모든 촛불을 응원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그저 응원으로 그치지 않고 촛불이 태운 빛을 세상에 전하는 거울이고자 합니다. 작고 소중한 빛을 그를 필요로하는 이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빛을 지켜내는 파수꾼의 마음을 퍼뜨릴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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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우리의 시도가 마법처럼 빛나기를!]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김성호의 매직스피커>에서 더 깊은 인터뷰를 만날 수 있습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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