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미술가의 재발견, 그 첫번째 '절필시대' 개막
2019.05.29 09:12
수정 : 2019.05.29 09:12기사원문
한국미술사에서 저평가된 근대기 작가를 발굴, 재조명하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절필시대’가 5월 30일~9월 15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에서 개최된다.
채색화가 정찬영(1906-1988)과 백윤문(1906-1979), 월북화가 정종여(1914-1984)와 임군홍(1912-1979),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1918-1967)과 정규(1923-1971) 등 6인의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이들의 작품 총 134점이 전시되며, 특히 정찬영의 식물세밀화, 정종여의 드로잉 등 60여 점이 최초 공개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화가 6인은 일제강점기, 해방기, 한국전쟁 시기, 전후 복구기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에 의미 있는 작품 활동을 보여준 작가들이다.
전시명 ‘절필시대’는 당시 많은 화가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절필할 수밖에 없었던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과 미완의 예술 세계를 주목하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성 화가에 대한 편견(정찬영), 채색화에 대한 오해(백윤문),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정종여, 임군홍), 다양한 예술적 시도에 대한 이해 부족(이규상, 정규)과 같은 이유로 이들의 작품 활동이 ‘미완의 세계’로 그친 시대를 성찰한다.
전시는 ‘근대화단의 신세대 : 정찬영, 백윤문’, ‘해방 공간의 순례자 : 정종여, 임군홍’, ‘현대미술의 개척자 : 이규상, 정규’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채색화조화와 채색인물화로 두각을 나타낸 신세대 화가 정찬영과 백윤문을 소개한다. 정찬영의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식물세밀화와 초본 일부를 최초 공개한다.
정찬영의 남편이자 1세대 식물학자인 도봉섭과 협업한 식물세밀화는 근대 초기 식물세밀화의 제작사례이다.
백윤문은 김은호의 화풍을 계승하여 채색인물화로 두각을 나타냈고, 남성의 생활을 소재로 한 풍속화로 개성적인 화풍을 완성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대표작 ‘건곤일척’(1939)을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월북화가 정종여와 임군홍을 소개한다. 정종여는 수많은 실경산수화와 풍경 스케치를 남겼으며 이번 전시에는 그가 월북 전에 남긴 작품과 자료를 바탕으로 남과 북에서의 활동을 함께 조명한다.
정종여가 제작한 ‘진주 의곡사 괘불도’(등록문화재 제624호)도 선보인다. 6미터가 넘는 괘불로 전통 불화 양식이 아닌 파격적인 채색 화법으로 그려졌다. 사찰에서 1년에 단 하루만 공개하는 그림이지만 특별히 이번 전시기간 동안 감상할 수 있다.
임군홍은 중국 한커우와 베이징을 오가며 자유로운 화풍의 풍경화를 남겼다. 또한 그가 광고사를 운영하며 직접 그린 관광 브로슈어 도안 등의 아카이브를 통해 초기 광고디자인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3부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라 불리는 이규상과 정규를 소개한다. 이들은 ‘모던아트협회’,‘현대작가초대미술전’등에 참여하며 해방 후 현대미술 화단 선두에서 활동했으나 이른 나이에 병으로 타계하고(이규상 50세, 정규 49세) 작품이 적어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이규상은 1948년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미술 단체인 ‘신사실파’를 결성하며 한국 현대 추상회화의 1세대로 활동했으나 남아 있는 작품이 10여 점에 불과하고 알려진 행적이 없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이규상과 관련된 아카이브와 제자, 동료 등과 인터뷰한 자료를 한 자리에 모아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정규는 서양화가로 출발해 판화가, 장정가(裝幀家), 비평가, 도예가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으나 그에 대한 평가는 회화와 비평에 국한돼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규의 작품세계가 ‘전통의 현대화’, ‘미술의 산업화’로 변해가는 과정을 추적했으며 특히 후기에 가장 몰두했던 세라믹 벽화를 소개한다.
전시 연계 행사로 ‘한국 근.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형학’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9월 7일 개최된다. 미술사학연구회와 공동 주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참여 작가와 작품세계를 주제로 연구자 5인이 발표할 예정이다. 별도의 신청 없이 참석 가능하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