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추념식서 김혜수가 낭독한 '6.25 참전용사 아내 편지'
2019.06.06 14:47
수정 : 2019.06.06 14:47기사원문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배우 김혜수가 6.25 참전용사 아내의 편지를 낭독해 현충일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김혜수는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행사에서 김차희(93) 여사가 쓴 편지 ‘당신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을 낭독했다.
김차희 여사는 6·25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여해 백천지구 전투 중 전사한 고 성복환 일병의 아내다.
김혜수는 "할머니께 이곳 서울현충원은 할아버지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지금 이 편지를 듣고 계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할머니를 대신해 오랜 그리움과 간절한 소망을 전하고자 한다"며 낭독하기 시작했다.
김 할머니의 편지에는 1950년 20살 신혼 시절 6·25 전장으로 징집되어야 했던 고 성복환 일병과 남편을 떠나보낸 뒤 홀로 살아온 김 할머니의 사연이 담겼다.
김혜수는 “당신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 전장의 동료에게 전해 받은 쪽지 한 장뿐,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난 후 몇 달 후에 받은 전사통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고 읽자 일부 참석자는 눈물을 훔쳣다.
편지 낭독이 끝난 뒤에는 소프라노 신영옥 씨가 우리 가곡 ‘비목’을 대학연합합창단, 국방부 중창단과 함께 합창했다.
다음은 김혜수가 낭독한 편지 전문.
당신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 내게 남겨진 것은 당신의 사진 한 장뿐입니다. 뒤돌아보면 그 가혹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스무 살에 결혼하여 미처 신혼살림을 차리지 못하고 큰 댁에 머물면서 지내던 어느 날, 전쟁과 함께 학도병으로 징집된 후, 상주 상산초등학교서 잠시 머물면서 군인들 인파 속에 고향을 지나면서도 부모님께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그 심정 어찌하였을까요?
전장의 동료에게 전해 받은 쪽지 한 장 뿐.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난 후 몇 달 만에 받은 전사 통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지요. 10년을 큰 댁에 머물면서 그 많은 식구들 속에 내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내가 살아 무엇할까, 죽고 싶어 식음을 끊고 지내면서도 친정 엄마 생각에 죽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때는 연금 타러 오라는 통지를 받고도 며칠을 마음 아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흔적을 찾으려 국립묘지에 갈 때마다 회색 비석들이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어떤 이가 국립묘지에 구경하러 간다는 말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젊은 청춘을 바친 무덤을 보고 어찌 구경하러 간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삶의 고통 속에 찾은 성당은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돌아오기를 기도로 보내며 지낸 수십 년, 언젠가 당신과의 해후를 포기한 후부터는 영혼의 은혜가 따르리라 생각하며 당신의 생일날을 제삿날로 정하고 미사를 드렸지요.
이제 구순이 넘은 나이. 평생을 기다림으로, 홀로 살았지만 나 떠난 후 제사를 못 지내주는 것에 마음 아파 큰 댁 막내 조카에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조카가 허락해 주어 작년부터 당신의 제사를 올려주게 되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가끔은 원망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남편을 위해 한 것이 없어 원망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마지막으로 소망이 있다면 당신의 유해가 발굴되어 국립묘지에 함께 묻히고 싶은 것뿐입니다. 내게 남겨진 것은 젊은 시절 당신의 증명사진 하나뿐인데 그 사진을 품고 가면 구순이 훌쩍 넘은 내 모습 보고 당신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난 아직도 당신을 만날 날만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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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