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정한근 21년 도피 어떻게…고교동창 이름으로 신분세탁
2019.06.23 16:07
수정 : 2019.06.23 22:18기사원문
18일 파나마서 LA로 출국하려다 붙잡혀 전날 송환
서울구치소 수감…24일 부친 정태수 행적 등 조사
(서울=뉴스1) 손인해 기자 = 회삿돈 320억원 횡령 혐의를 받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씨(54)가 고등학교 동창 이름으로 신분세탁을 하며 해외 도피생활을 이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손영배)은 회사자금 322억여원을 횡령해 국외에 은닉하고 253억여원의 국세를 체납한 채 21년간 해외도피 생활을 해온 정씨를 추적 10개월여만에 국내로 송환한 경위를 23일 밝혔다.
지난 18일 파나마에서 붙잡혀 전날 오후 국내로 송환된 정씨는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지난해 8월 정씨 아내와 자녀가 캐나다에 거주하는 사실을 확인한 국제협력단은 캐나다 국경관리국(CBSA) 협조로 정씨 가족의 캐나다 거주를 위한 서류에 정씨가 아닌 캐나다 시민권자 유모씨(54)의 이름이 스폰서로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유씨는 정씨와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한국지부와 CBSA 일본 주재관의 협조를 받아 정씨가 유씨의 이름을 이용해 여러 영문이름으로 캐나다 영주권과 미국 시민권을 순차로 취득해 신분을 세탁하고 2017년 7월 미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에콰도르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했다.
국제협력단은 이에 따라 지난 2월 에콰도르에 정씨에 대한 범죄인인도 청구를 하고 에콰도르 현지 출장을 통해 정씨의 송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지난 4월 한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에콰도르 대법원은 인도를 거부했다.
이후 에콰도르 당국과 정씨의 체류비자 연장불허·추방을 위한 협의를 이어오던 중 에콰도르 내무부로부터 정씨가 LA를 목적지로 지난 18일(에콰도르 현지시각) 오전 4시23분발 파나마행 비행기로 출국 예정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이륙 약 1시간 전이었다.
검찰로부터 정씨의 인터폴 적색수배 관련 정보를 전달 받은 파나마 이민청은 지난 18일 현지시각 오전6시35분께 파나마에 도착한 정씨를 공항 내 보호소에 구금했다.
국제협력단은 파나마 대사관 소속 영사와 면담한 정씨가 자진귀국 의사를 밝힘에 따라 브라질 상파울루와 UAE 두바이를 경유해 정씨를 국내로 송환했다.
정씨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 운영자로 1997년 11월께 이 회사 대표이사 및 기획부장과 공모해 동아시아가스㈜가 보유한 루시아석유㈜ 주식의 매각자금 322억원을 스위스에 있는 타인명의 계좌에 예치해 횡령하고 재산을 국외로 은닉한 혐의를 받는다.
정씨는 1998년 6월17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받은 이후 잠적했다. 2008년 9월24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법률위반(횡령)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재산국외도피죄)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중인 이 사건은 2023년 9월23일 재판시효 완성 예정이다.
공범인 정모 동아시아가스 대표이사와 임모 기획부장은 1999년 5월 각각 징역 3년과 2년6개월 및 공동 추징금 434억원을 선고받은 판결이 확정됐고 추징금에 대해선 2008년 8월 집행불능 처리된 상태다.
국제협력단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예세민)는 전날 정씨를 상대로 1998년 검찰 조사 이후 최초 출국 경위 등에 대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씨가 피로감을 호소함에 따라 조사를 계속 진행하지 못한 검찰은 24일 정씨의 횡령 혐의와 아버지 정태수 회장(96)의 행적을 따져 물을 방침이다. 정 전 회장도 2007년 출국한 뒤 12년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