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F 규제 권고안은 유예기간이 없다
2019.06.25 17:14
수정 : 2019.06.25 18:52기사원문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암호화폐 규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암호화폐가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사업을 할 때 필요한 가업의 조건, 각국 정부가 사업자를 관리할 기준이 명시됐다. 사실상 강제다. 그러면서 1년간 각 회원국 사정에 맞춰 법에 반영하라고 유예기간을 줬다. 우리 정부도 권고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앞으로 1년간 법률개정, 가이드라인 수정 같은 작업을 하겠다고 한다.
FATF 의장국인 미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구조와 기술, 정책 구조에 대해 열공모드였다.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금융범죄단속반(FinCEN) 같은 규제기관들이 먼저 공부를 시작했다. 최근 미국의 한 블록체인·암호화폐 콘퍼런스에 다녀온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와 관련 있는 모든 기관의 고위직부터 실무자까지 공개 무대에서 자신이 소속된 기관의 업무와 계획을 설명하고 기업인들과 토론을 벌이더라"며 "암호화폐와 관련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자신있게 말하더라"라고 했다.
FATF의 권고안 발표는 어쩌면 미국이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과 정책의 주도권을 잡을 준비가 끝났다는 선언 아닐까 싶다. 2년 가까이 미국의 규제기관들이 공부하면서 세계 각국에 동일한 규제를 강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이 그만큼 파급력 있는 산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확인시켜 주는 것 아닐까 싶다.
이제 미국 기업들은 기준에 맞춰 사업을 시작하면 된다. FATF 규제는 가혹하고 어렵지만, 규제는 선명하게 드러난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니 미국 기업들은 규제를 지키면서 피해갈 사업방법을 찾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지금부터 1년간 밀린 공부를 마저 하고 규정을 정비하겠다고 한다.
미국 기업들이 지금 시작하는 사업준비를 우리 기업들은 1년 뒤에 하라는 말로 들린다.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해도 경쟁이 어려운 신산업에서 1년 기다렸다 뛰라는 말로 들린다. 정책을 만들고, 국제무대에서 우리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에 정부가 속도를 내줬으면 한다. 굼뜬 정부 때문에 기업들의 출발이 늦었다는 말을 더 이상 듣지 않도록 말이다.
FATF 규제 권고안에는 유예기간이 없다. 윤곽을 드러낸 순간 출발 신호음이 울린 것이다. 인터넷산업에서 잃어버린 17년을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에서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1년 뒤 또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는 일을 정부가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이구순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cafe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