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10년, '붕괴의 역사'를 쓰다

      2019.06.26 16:39   수정 : 2019.06.26 18:31기사원문
지난 2008년 9월 16일은 이른바 '리먼브라더스 사태 다음 날'이었다. 이날 전 세계 글로벌 화폐시장들이 멈춰섰다. 2008년 금융위기에 뒤따른 지난 10년은 줄잡아 말해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 책의 첫 장은 2008년 금융위기 사태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인 대사건이었지만 그 영향이나 결과는 각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다.
유럽은 2008년의 충격이 그대로 유로존의 위기로 이어졌으며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현재 유럽연합은 이탈리아 재정위기로 여전히 유로존의 안정을 염려하는 처지다. 우선 전 세계에 걸쳐 교역량이 급감했다.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주요 수출국들은 1929년보다도 더 심각한 최악의 불경기를 경험했다. 특히 주요 소비재를 수출하는 국가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는데 그중에서도 동아시아의 수출 주도형 제조업 중심지들이 겪은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은 은행시스템과 국제무역 두 가지 부분에서 차례로 위기를 맞았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들과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 1990년대 금융위기를 경험한 한국의 경우 2008년 국가 재무 상태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무역수지는 흑자 진행중이었다. 한국의 은행들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와 크게 엮여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결정적으로 1990년대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국제화되어 있었고 여기에 수출주도형 국가로서의 재정적 필요와 수익을 회수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자본재의 거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한국의 은행시스템은 달러화를 조달하기 위한 국제 화폐 시장과 원화와 달러화를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외환시장에 크게 의존했던 것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이런 시장들은 무너져 내렸고 덩달아 한국의 금융시스템 역시 엄청난 자금조달 압박에 시달렸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의 주요 금융가와 다르게 한국은 자금조달 중단뿐 아니라 원화의 막대한 평가절하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한국처럼 막대한 외화를 보유한 국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점은 경제가 튼튼한 국가라도 세계적인 충격파 앞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유럽에선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장기간의 불황이 이어졌으며 결국 남유럽 지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한국이 겪은 2008년 이후 시기는 대단히 다르다. 2009년 이후부터 한국이 보여준 경제성장은 대단히 괄목할 만한 수준이며 한국의 연구개발 분야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화는 현재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저자는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역사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정치적 이단아 트럼프의 당선으로 끝맺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결국 1980년대 중반부터 지속된 세계 경제가 크게 안정된 시기는 결국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만나면서 정치적 위기로 변모했다.


세계적으로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의 분위기를 공통분모로 하는 극우 정파가 세를 불렸고 프랑스와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에선 온건 좌파가 몰락했다. 특히 서구사회에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고개를 처들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전쟁과 독재의 정치적 파국으로 귀결된 대공황 전후의 시기를 환기함으로써 2008년 금융위기와 그 여파를 분명하게 진단하고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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