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총재 해임한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 , 통화정책마저 꿰차나
2019.07.07 17:44
수정 : 2019.07.07 17:44기사원문
2018년 외환위기를 겪고, 지난해 경기침체 와중에도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하며 재선에 성공한 뒤 권력집중에 속도를 내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마저 꿰찰 기세다.
이번주 러시아 미사일 배치를 둘러싼 갈등 속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에 경제제재를 예고한터라 중앙은행 독립성 약화와 경제제재까지 겹치는 터키 리라는 급락세를 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고금리 정책을 대놓고 비난해 온 에르도안이 이날 대통령령으로 체틴카야 TCMB 총재를 해임했다. 2016년 4월 임명돼 아직 임기가 1년이 남았지만 에르도안과 고금리를 놓고 갈등을 빚을 끝에 결국 쫓겨났다. 특히 오는 25일 통화정책 회의에서 금리인하가 예상되던 시점에 눈엣가시 같은 총재를 날려버린 것은 금리인하 폭이 당초 전망보다 깊고, 앞으로도 추가 금리인하가 뒤따를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시장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대신 국영 할크방크에서 경력 대부분을 다진 경제학자인 무라트 우이살 TCMB 부총재를 후임으로 지명했다. 체틴카야 해임은 지난달 에르도안의 외신 기자회견에서 예고됐다. 그는 그 자리에서도 고금리가 높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의 원인이라는 자신의 궤변을 다시 강조하고 중앙은행의 고금리 정책이 터키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체틴카야는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에르도안의 위세에 눌려 긴축적 통화정책에 소극적이었다. 터키 리라가 사상최저치로 폭락하고 터키가 구금한 미국인 선교사 석방 문제로 미 경제제재에 직면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고공행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금리인상을 주저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9월 에르도안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24%로 끌어올렸고 마침내 인플레이션을 잡는 승기를 마련했다. 금리인상 한달 뒤인 10월 25%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은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해 지난달에는 15.7%로 떨어졌다. 인플레이션이 잡힐 기미가 보이면서 경기침체를 완화하기 위한 소폭의 금리인하 여력까지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에르도안은 더 과감한 금리인하를 요구하면서 결국 그를 내쫓았다.
시장은 흔들리던 TCMB 독립성이 이번 조처로 유명무실해지게 됐다고 보고 있다. 25일 통화정책 회의에서 인플레이션 둔화로 만들어진 여력을 바탕으로 금리인하에 나서더라도 시장에서는 이를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총재 해임을 '멍청한 짓'이라고 칭한 런던 블루베이 자산운용의 팀 애슈 애널리스트는 "새 총재는 대통령궁의 요구에 따라 금리를 낮출 것이라고 게 시장의 가정"이라고 말했다.
금리인하가 굴복으로 비쳐지면 이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로 신뢰를 잃으며 추락하고 있는 터키 리라 하강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운용사 GAM의 폴 맥나마라 펀드매니저는 중앙은행 총재 해임은 "매우 이례적으로 멍청한 짓"이라며 "8일에 장이 열리면 리라는 급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촉발된 외환위기로 이미 가치가 30% 넘게 추락한 리라가 급락하면 무엇보다 2000억달러가 넘는 외화대출을 쌓아두고 있는 터키 기업들의 채무부담이 커지면서 경제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맥나마라는 체틴카야 해임으로 TCMB는 고금리·유동성 공급 확대를 통한 빚에 기초한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정책목표를 폐기하게 될 것이라면서 빚을 늘려 경기침체를 빠르게 벗어나려한다면 이는 터키 경제를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