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병에 2000만원… 가질 수 없는 너
2019.07.18 19:36
수정 : 2019.07.18 22:03기사원문
로마네 꽁띠(Romanee Conti), 페트뤼스(Petrus), 르 팽(Le Pin),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 와인 매니아라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명품 와인들입니다. 한 병에 적어도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의 몸값을 가진 이들 최고가 와인들은 웬만한 와인 매니아들도 이를 경험해 본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이들 명품 와인들은 다른 와인들이 쉽게 넘볼수 없는 독보적인 맛과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네 꽁띠는 프랑스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최고가 와인입니다. 시중에서 2000년대 빈티지를 구하려면 한 병에 적어도 2000만원은 줘야 하는 지구에서 존재하는 최고가 와인입니다. 또 페트뤼스와 르 팽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가장 비싼 와인입니다. 한 병에 1000만원 안팎을 기록하는 이 와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보르도 5대 특급와인(라피트 로췰드, 마고, 라뚜르 등)의 5배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의 컬트 와인의 대명사인 스크리밍 이글도 만만치 않은 몸값을 자랑합니다. 페트뤼스와 르 팽보다 더 큰 돈을 들여야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가격이 적정한 가격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이런 고가와인의 세계에서 철저하게 적용되는 법칙이 있습니다.
고급와인의 대명사인 프랑스는 한 해 40억 리터에 달하는 와인을 생산합니다. 이를 생산하는 와이너리만해도 수백만개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들 와인 거의 대부분 한 병에 1만원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팔리거가 그마저도 판로를 못찾으면 공업용 알코올로 사용되기 위해 폐기되는 와인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최고가 명품 와인들은 한 병에 100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이를 구하지 못해 안달나는 상황은 정말 아이러니 합니다.
보르도 오른쪽 지방에서 생산되는 최고가 와인인 페트뤼스를 접해 본 사람들은 "풀바디의 진한 맛을 기반으로 메독의 섬세한 맛과 생떼밀리옹의 부드러움, 지브리 샹베르탱의 강직함까지 모두 녹아있는 황홀한 와인"이라고 표현합니다.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멜롯(95%)품종으로만 만드는 와인이 이렇게 복잡하고 강건한 맛을 낸다니 사뭇 놀랍기도 합니다.
또 라피트 로췰드(Lafite Rothschild), 마고(Margaux), 라뚜르(Latour), 오 브리옹(Haut Brion), 무똥 로췰드(Mouton Rothschild)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 왼쪽 지방의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1등급 와인은 저마다 뛰어난 맛과 개성으로 수백년 전부터 전 세계인 매니아들을 홀려왔습니다. 모두가 까베르네 쇼비뇽을 기반으로 멜롯과 까베르네 프랑 등을 블렌딩해 만드는 와인들로 복합적인 맛과 뛰어난 균형미가 특징입니다.
라피트 로췰드는 잔잔한 바디감과 절제된 균형미로 인해 '와인의 귀족'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라뚜르는 한 모금 마시면 입안을 꽉 채우는 바디감이 일품인 강건한 와인으로 정평나 있습니다. 마고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맛과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향 때문에 와인의 여왕으로 불리웁니다. 무똥 로췰드는 깊고 어두운 붉은색 컬러에 아로마가 가장 화려하기로 유명하고 오 브리옹은 부드러운 풍미에 독특한 트러플 버섯향기가 일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페트뤼스와 보르도 5대 특급와인은 모두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독보적인 명품이지만 두 지역의 와인 가격은 무려 5배에 가까운 차이를 보입니다. 보르도 5대 특급와인은 시중가격이 200만원 정도인 반면 페트뤼스는 시중 가격이 1000만원에 달합니다. 가격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바로 '희소성의 원리' 때문입니다. 생산량이 완전히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라피트 로췰드는 포도밭 100㏊에서 연간 48만병을 생산합니다. 반면 페트뤼스는 포도밭이 10.9㏊로 작은데다 연간 4만~5만병만 생산합니다.
이같은 희소성의 원리는 같은 브랜드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본 로마네 마을의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DRC)'가 생산하는 '로마네 꽁띠'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입니다. 고급 품종인 피노 누아를 사용해 만드는 와인으로 시중가격이 한 병에 2000만~3000만원에 달합니다. 이 와인을 마셔보면 진한 딸기향과 온갖 꽃내음이 하나하나 구분돼 들어오는 그런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같은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명품 와인인 '라 타슈(La Tache)'나 '리쉬부르(Richebourg)'도 이에 못지않은 뛰어난 품질을 자랑합니다. 일부 매니아 층에서는 오히려 라 타슈나 리쉬부의 품질이 낫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격은 로마네 꽁띠가 너댓배가 비쌉니다. 런던국제와인거래소(Liv-ex) 기준으로 라 타슈 1박스의 가격은 2만3340(3437만원), 리쉬부르는 1만4513파운드(2137만원)입니다. 반면 로마네 꽁띠 1박스의 가격은 9만8732파운드(1억4543만원)에 달합니다.
로마네 꽁띠는 포도밭이 정말 작습니다. 면적이 1.63㏊로 한해 겨우 600상자(7200병) 정도만 생산됩니다. 반면 이웃한 라 타슈는 5.03㏊, 리쉬부르는 7.40㏊의 포도밭에서 생산됩니다. 결국 생산량의 차이가 가격을 이처럼 벌린 것입니다.
이런 희소성의 원리를 가장 잘 활용한 것은 1980년대의 미국 나파밸리에서 생산된 컬트 와인들입니다. 컬트 와인은 숭배를 뜻하는 라틴어 'cultus'에서 유래된 말로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아주 한정된 양의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입니다. 1990년대 초반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이나 '할란 이스테이트(Harlan Estate)' 등이 대표적입니다. 워낙 유통되는 물량이 적어 이 와인들은 구입하려면 구매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고 해당 와이너리가 구매자의 자격을 따져 판매 여부를 결정하기도 하는 다소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 최고 영향력을 가진 미국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와인 평가점수를 100점을 주면서 가격은 한순간에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특히 미국을 대표하는 컬트와인 스크리밍 이글은 런던국제와인거래소 기준 한 박스 가격이 2만610파운드(3035만원)으로 페트뤼스보다도 비쌉니다. 이 한병 값이면 보르도 특급와인인 라피트 로췰드 5병을 먹을 수 있는 가격이 된 것이죠.
세계 최고가 와인의 세계는 이처럼 별천지입니다. 그러나 가격이 꼭 품질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만 하더라도 61개 리스트에 들지 못했지만 정말 훌륭한 품질을 보이는 와인들이 많습니다. 물론 가격은 이들 그랑크뤼 클라세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저는 좋은 자리에서 '샤또 소시앙도 말레(Chateau Sociando Mallet)'나 '샤또 글로리아(Chateau Gloria)', '샤또 샤스 스플린(Chateau Chasse Spleen)'을 즐겨 마십니다. 운이 좋으면 시중에서 5만원 수준에 구입할 수 있는 와인들입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