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안 들어, 언니들 꼭 붙잡아"…삼척 전복사고 마지막 순간
2019.07.24 07:51
수정 : 2019.07.24 10:14기사원문
(홍성=뉴스1) 류석우 기자,이봉규 기자 = "거기 지리가 험하더라고.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가는 중이었는데 반장(강모씨)이 갑자기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다는 거야. 언니들 꼭 붙잡으라고 하더라고. 그러더니 갑자기 쾅 하고 가드레일 들이받은 거야."
22일 오전 7시33분쯤 한국인 7명과 태국 국적 노동자 9명을 태우고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의 한 고갯길을 넘어가던 15인승 그레이스 차량이 가드레일을 받고 전복됐다. 뒤집어진 승합차는 나무에 걸려 멈췄지만 운전자 강모씨(62·여)와 앞 좌석에 탑승했던 정모씨(61·여), 태국 국적 외국인 노동자 2명이 숨졌다.
사고 다음 날인 23일 충남 홍성의 한 병원에서 만난 김모씨(75·여)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뒤 의식을 차린 김씨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강씨의 시신이었다. 슬퍼할 틈도 없었다.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통증이 심해 움직일 수 없었다.
김씨를 살린 건 사고 현장에서 도주한 것으로 알려진 태국 국적의 노동자였다. "갑자기 태국 애가 나를 번쩍 안더니 가드레일 밑에 두고 갔어. 고맙더라고." 김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태국 국적 노동자 3명이 사라진 것도 몰랐다고 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운전자 강씨를 포함한 내국인 2명과 태국 국적 외국인 2명 등 4명이 심정지 상태로 의료기관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나머지 3명은 중상, 9명이 경상을 입었으나 사고 이후 경상자로 파악된 외국인 3명이 현장을 이탈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로 충남 근처, 경북은 처음…'정' 때문에 갔다"
김씨를 비롯한 할머니들이 홍성을 벗어나 농촌 일을 도우러 다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들은 충남 서산시 부석면 등 주로 서산 일대를 돌며 밭도 매고 고구마와 양배추도 심었다. 충남을 벗어나 경상북도 봉화군까지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씨가 이렇게 먼 거리까지 나선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닌 강씨에 대한 '정' 때문이었다. 그는 "집에서 매일 TV만 보면 머리만 아프고 그렇다고 매일 가면 기운이 안 따라줬다"며 "정으로 오라고 하면 몇 번씩 따라갔다"고 설명했다. 강씨에게는 이런 식으로 종종 연락이 왔었다.
이렇게 강씨에게 연락이 오면 같이 다니는 할머니들이 홍성에 7명 정도 있다고 김씨는 말했다. 매번 가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서로 반찬도 싸와 일도 하고 바람도 쐬러 나간다고 했다. 이번 사고 당일에도 이렇게 모인 할머니들이 5명이었다. 사고로 숨진 강씨와 정씨는 각각 반장, 부반장 역할을 하며 일을 나갈 할머니들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
이들이 받는 일당은 여성은 6만원, 남성은 7만원이었다. 도시락을 싸오면 5000원을 더 줬다. 일이 끝나면 항상 강씨가 돌아오는 길에 일당을 지급했다. 김씨는 "악착같이 하는 일이 아니고 다들 재미로 했다"며 "가끔 일이 끝나면 일당으로 한 사람이 곱창도 샀다"고 말했다.
◇10년 전에도 같은 사고 낸 강씨…이웃 주민들 "열심히 살았다"
경북 파종 작업을 위해 할머니들을 모으고 직접 운전까지 한 강씨는 10년 전에도 비슷한 사고를 낸 적이 있다. 2009년 1월 홍성군 홍성읍 옥암리 축협 앞 편도 2차로 도로에서 굴착기를 들이받아 5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친 사건이었다. 당시에도 쪽파 파종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23일 오후 강씨가 살던 마을을 찾았다. 마침 강씨의 빈소를 찾기 위해 동네 주민들이 마을 어귀로 나오고 있었다. 주민들은 강씨에 대해 묻는 질문에 "너무 안타깝다"면서도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한 이웃 주민은 "정말 열심히 살던 사람이었다"며 "얼마나 잘했는데. 주위 사람도 잘 쟁기고 좋은 일도 많이 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같이 빈소로 향하던 다른 주민은 "농사도 짓는 사람인데 매일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 다른 지역으로 일하러 가는)그 일도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강씨는 홍성 인근의 주민들을 모아 다른 지역 농촌을 다녀오는 일을 수십 년 동안 해왔다. 농사일이 일 년 동안 지속할 수 없을뿐더러 규모가 크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다른 이웃 주민은 "넓은 밭이나 논을 가지고 있으면 규모가 있어서 괜찮은데 (규모가) 작은 곳은 수입이 적으니까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에서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다른 지역까지 일을 하러 다녀야 하는 농촌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10년 만에 비슷한 사고를 낸 강씨지만, 다른 지역까지 일을 하러 가야 하는 구조가 이러한 상황을 낳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날 만난 홍성군청 관계자도 "현재 홍성군은 농번기가 지나 농사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현재 '브레이크에 이상이 있었다고 들었다'는 피해자들의 진술과 사고 현장에 스키드마크가 없던 점 등을 종합할 때 차량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 오전 1시에 충남 홍성을 출발해 밤사이 6시간가량을 이동했던 것을 감안해 강씨의 운전 부주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