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모자 추모제…"빈곤층 기만하는 복지제도 개선하라"
2019.08.23 15:54
수정 : 2019.08.23 16:03기사원문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 모자의 이야기가 참 오래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에서 굶주림 끝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어머니와 6살 아들이 사망 두 달여 만에 발견됐다. 23일 서울 도심에서는 이들 모자의 죽음을 추모하고 빈곤으로 인한 죽음을 구제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을 규탄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한국한부모연합 등 단체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추모제를 열고 숨진 모자의 죽음이 '사회적 죽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제도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추모제는 무용가 이삼헌씨가 두 모자의 넋을 기리는 진혼무를 추는 것으로 시작됐다. 한쪽에 마련된 제단에는 '故 관악구 모자'라고 적힌 위패가 세워졌다. 양옆으로는 '빈곤정책의 실패로 가난을 피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의 위패도 같이 놓였다. 참가자들은 흰 국화를 손에 든 채 침통한 표정으로 두 모자의 죽음을 기렸다.
이들은 숨진 탈북민 모자와 같은 빈곤계층은 복잡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복지제도의 혜택을 스스로 이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 국가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면서 가난을 입증할 책임을 개인에게 과도하게 지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어머니 한모씨(42·여)의 아들 김모군(6)이 뇌전증을 앓고 있었고 이 때문에 유치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첫 발언자로 나선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은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한줄이 보도에서 가장 눈에 먼저 들어왔다"며 "뇌전증을 가졌다고 유치원에서 거절당했다는 말에 분노와 좌절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진방 한국한부모연합 사무국장은 "세계 경제력 11위이자 저출산을 위해 13년간 15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대한민국에서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며 "2014년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전 재산 70만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잊히기도 전에 황망한 참사와 마주했다"고 발언했다.
그는 "이들이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에는 16만4000원의 월세가 16개월이나 밀린 상태였지만 그 사이 집 현관문을 두드린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은 한 명도 없었다"며 "굶어 죽어가면서도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폭력적이고 비극적인 복지국가"라고 비판했다.
숨진 한씨가 양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동수당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이혼 관련 서류를 요구받았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박영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사무처장은 "굶어죽겠다는 말이 농담처럼 여겨지는 시대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라며 "기초생활보장법은 무엇 때문에 소위 부정수급자를 색출하고, 복잡하고 모욕감을 주는 행정절차로 가난을 증명하게 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이혼확인서에서 부모를 제외한 3인 이상의 주민등록번호·주소·연락처·이름·서명을 요구한다더라"며 이런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 복지를 신청하는 사람을 부정수급자로 간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모제를 마친 이들은 탈북민 모자의 죽음에 항의하는 서한을 들고 청와대로 향했다.
이들은 "정부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신청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있었는데 신청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데 이는 가난한 이들을 완전히 기만하는 말"이라며 "복잡하고 까다로운 선정기준은 복지 수요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Δ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고 Δ기초생활수급과정을 간소화하고 임의로 서류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 관악경찰서는 이날 "고도의 부패로 제약이 있었으나 확인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뚜렷한 질병이나 손상이 없었다"며 두 사람의 사망원인을 뚜렷하게 밝힐 수 없다는 부검 소견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