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첫 신인 우승' 이재경, "다음 목표는 PGA투어 진출"

      2019.09.02 12:09   수정 : 2019.09.02 12:2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미국갈 때 고생하신 아빠 비지니스석 태워 드리기 위해 열심히 쳤다."
지난 1일 막을 내린 경남 진해 아라미르골프리조트에서 막을 내린 KPGA코리안투어 우성건설 아라미르 부산경남오픈에서 '루키' 이재경(20·CJ오쇼핑)을 우승으로 이끈 원동력은 그의 말대로 '고생하신 부모님'이었다. 우승 직후 신인답지 않은 당당함을 보이던 그도 '부모님'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때는 잠시 울컥해 했다.



전남 강진의 조그마한 콩나물 공장인 강남식품의 1녀1남 중 둘째로 태어난 이재경은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말에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원래는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
하지만 골프를 가르치려던 딸(지우)이 재능이 없다고 판단한 아빠 이갑진씨가 '꿩대신 닭' 심정으로 아들에게 골프채를 쥐어 준 것이 계기가 됐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무엇 보다도 아무 걱정없이 전폭적 지원을 해줄 수 있을만큼 살림살이가 넉넉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콩(집이 콩나물 공장을 한데다 키가 적어 붙은 닉네임)' 이재경은 시작부터 열정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들의 하려는 의지에 부모는 몸이 부서져라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 부모님을 생각해서인지 이재경은 또래에 비해 일찍부터 어른스러웠다. 비싼 레슨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고 거의 '동냥 레슨'에 의존하다시피 했다. 그래도 이재경은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골프 입문 2년만인 초등학교 6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돼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활동했다. 그리고 중3학년 때는 전국 규모의 선수권대회서 6승을 거뒀다. 또한 그해 예선전을 거쳐 출전했던 KPGA코리안투어 최경주인비테이셔널에서 당당히 3위에 입상, '골프 신동'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그런 활약에 힘입어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열렸던 유럽프로골프투어 핫산 트로피 대회에 초청 받기도 했다. 15세의 어린 선수가 혈혈단신으로 31시간의 비행 끝에 대회장에 도착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컷 탈락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재경의 출전은 그 자체로 유럽프로골프투어서 많은 화제가 되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재경은 1년6개월간 태극마크를 달고 활동했다. 하지만 달갑지 않은 '드라이버 입스'가 찾아와 부진에 빠지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를 반납하고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고3 때 KPGA 3부투어서 우승, 정회원 자격을 획득한 그는 작년 2부투어인 챌린지 투어서 2승을 거둬 상금 순위 2위로 이번 시즌 코리안투어서 활동하게 됐다.

올 시즌 개막에 앞서 그는 '1승 이상과 신인상 수상'이 시즌 목표라고 당당히 밝혔다. 당연히 팬들의 기대도 컸다. 하지만 상반기에 9개 대회서 7차례나 컷 탈락했다. 극심한 부진이었다. 팬들의 실망도 실망이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컸다.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었다. 식사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골프채를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습량은 많았다.

그랬던 그가 하반기 개막에 앞서 가진 2개월간의 휴식기를 통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스윙에 원인이 있다고 판단, 그럴 때마다 스윙을 처음부터 고치려 했던 게 패착이었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레슨 의존도'가 너무 컸던 것이 참화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은 포인트 위주의 레슨을 받고 있다.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스윙을 찾으면서 잘 안되는 부분은 스윙 코치의 도움을 받는 형식이다.

스윙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스윙에 굳은 믿음까지 생겨났다. 당연히 스스로 '유리 멘탈'이라 했을 정도로 무너졌던 정신력도 회복했다. 그가 대회 마지막날 18번홀(파5)에서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킨 뒤 했던 포효는 어쩌면 그동안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응어리를 발산함과 동시에 자신의 발전된 미래를 지켜봐달라고 팬들에게 던진 메시지였는 지도 모른다.

이재경의 목표는 자신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최경주(49·SK텔레콤)와 김시우(24·CJ대한통운)가 활동중인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8월에 PGA투어 차이나에서 열렸던 난샨오픈을 통해 PGA 2부투어인 콘 페리투어(웹닷컴투어 대체) 1차 예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그래서 오는 20일 아빠와 함께 미국 원정길에 나선다.

이재경은 "이번 우승이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스윙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많이 생긴 듯 하다"며 "미국 원정은 당장 어떤 결과를 얻으려기 보다는 경험 쌓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후회없는 경기를 하고 돌아올 생각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가 미국 진출을 서두르는 것은 김시우의 영향이 컸다. 김시우는 이번 대회 기간 내내 SNS로 후배를 열렬히 응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큰 힘이 됐다. 이재경은 "시우형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린나이에 힘든 곳 가서 성공하지 않았나. 존경스럽다. 아직은 나도 어리니까 어린 나이에 빨리 도전해보고 싶어서 빨리 간다. 시우형이 빨리 올 수록 좋다고 조언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 올라올 때 형으로부터 축하 전화 받았다. 미국서 밤잠을 설치고 중계방송을 봤다면서 특히 10번홀 OB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플레이를 한 것을 칭찬해줬다"고 귀띔했다.
우승하고 하루가 지났음에도 "아직도 얼떨떨 하다"는 이재경은 "앞으로도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잘 풀려도 똑같이 하는 선수가 되겠다. 잘나간다고 거만한 선수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항상 겸손하고 성실한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침체기의 한국 남자골프에 또 한 명의 기대주가 탄생한 것은 분명한 듯 하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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