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2019.09.05 17:17   수정 : 2019.09.05 17:17기사원문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 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팔랑팔랑 날려야 할 것 같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아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될 것 같다.
"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요즘 곰곰이 되씹는 고 박완서님의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여성 '나'는 어릴 때 유난히 부끄러움을 탔다. 험한 세파에 시달리며 '나'는 점점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이른바 잘나가는 동창을 만나 그들과 '끈'을 만들려 열심히 노력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겉모습과 달리 허위와 가식으로 무장된 동창의 실체를 알고 환멸을 느낀다. 비단 그들뿐 아니다. 세속적 출세와 물질적 욕망만이 유일한 가치가 된 우리 사회를 보며 그는 어릴 적 부끄러움을 회복하게 된다. 수많은 학원 간판을 보며 주인공은 우리가 우선 가르쳐야 할 것이 부끄러움이라는 절규를 보낸다.

'조국 사태'에서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소설보다 더 지독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 망각증이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다른 사안들은 제쳐 놓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은 고교 1학년 2주간 인턴 후 의학논문의 제1저자가 됐다. 조 후보자 본인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명백히 잘못된 사실이다.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과 합리의 문제일 뿐이다. 고교생이 "놀랍도록 열심히 했다"고, "영어를 좀 잘한다"고 저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논문이 아니다. 기여도가 가장 큰 저자인 제1저자의 영예는 더더욱 언감생심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책임자인 장 모 교수가 엄중한 법적·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다. 특히 언필칭 지식인이라면 이의가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온갖 교언영색으로 논문을 감싸는 대열에 앞장서는 것을 보며 아연실색하게 된다. 분노나 허탈감에 앞서 소설 주인공에게 통증처럼 다가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부끄럽다.

조 후보자 스스로 말했다. 비슷한 의혹을 받는 사람이 후보자로 지명됐다면 사퇴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의 소명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법무부 장관이 돼야겠다고. '조국 법무부 장관'을 결사옹위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논리를 편다. 법으로 밥을 먹는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대한민국의 사법과 검찰의 현실이 어떻기에 이토록 허위와 가식으로 점철된 사람이 감히 개혁을 외칠 수 있다는 말인가. 조국 한 사람 외에는 검찰개혁을 할 인물이 없다? 대한민국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말이 또 부끄럽다.

소설처럼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이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가능한 한 가지를 권하고 싶다. 여야가 청문회 후 보고서를 채택하라는 것이다. 청문회를 본 여야가 의견을 바꾸는 기적(?)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공연히 의견 일치를 구하느라 다툴 필요 없다. 적격·부적격 의견이 갈리면 두 의견 모두 병기한 보고서를 채택하면 된다.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 기록은 이미 차고 넘친다. 같은 기록 하나 더 보태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수많은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장관이 된 기록을 남기는 게 오히려 낫다. 그래야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깃발 혹은 작은 손수건이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물론 후대에도 말이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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