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도 세대갈등 첨예...136년된 극장이 그린 2028년 미래...'렛 뎀 잇 머니'

      2019.09.18 13:56   수정 : 2019.09.18 13:5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베르톨트 브레히트, 하이너 뮐러 등 저명한 예술가들이 거쳐간 136년 역사의 독일 명문 극장, 도이체스 테아터(DT: Deutsches Theater Berlin)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14년 데아 로어가 극본을 쓴 ‘도둑들(Diebe)’을 선보인지 5년만이다.

이번에는 세계의 미래를 예측하고 그려낸 실험적인 연극 ‘렛 뎀 잇 머니(Let Them Eat Money. Which Future?!)’를 선보인다.

9월 20~21일 LG아트센터에서 단 두 차례 공연한다.

■ 미래를 예측하는 실험적인 연극

‘렛 뎀 잇 머니’는 독일의 훔볼트 포럼(Humboldt Forum im Berliner Schloss)의 미래에 대한 연구 및 연극 제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됐다.

이에 따라 도이체스 테아터와 독일의 훔볼트 포럼은 연극 제작에 앞서 1년여 간 경제, 사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 전문가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참여한 리서치, 토론 등의 과정을 거쳤다. ‘참여형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과학자, 예술가, 관객들은 짧지 않은 연구조사와 심포지엄을 통해 미래에 대한 예측과 계획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면서 향후 10년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를 그려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연극 ‘렛 뎀 잇 머니’가 만들어졌다.


유로존 붕괴부터 난민 대이동, AI에 의해 대체되는 노동력, 데이터의 통제와 감시,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2018년부터 2028년까지, 약 10년 간 유럽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사건들이 촘촘하게 나열된다.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연출가 안드레스 바이엘이 연출자로 나섰다. 그는 2011년 ‘이프 낫 어스, 후’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 등을 수상했다.

2018년 9월 독일에서 초연했으며, 독일 이외 국가에서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드레스 바이얼 연출은 18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과 독일 양국은 미래에 대한 비슷한 질문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과거 역사의 유사성, 그러니까 비단 분단뿐만 아니라 위협에 대한 존재론적인 고민들, 이러한 두려움이 어떤 원동력이 돼 미래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얼 연출이 이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도 2017-2018년 독일에 닥친 재정위기가 직접적 계기가 됐다.

"당시 재정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과거로 돌아가 책임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연극을 만들기도 했다. 그때 위기가 발생한 후 과거로 돌아가 원인을 찾기보다 미래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고, 다가올 위기를 막기 위해 오늘날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앞서 밝혔듯, 이번 연극은 방대한 리서치의 결과가 바탕이 됐다. 하루 종일 250명의 참여자와 12명의 전문가가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장이 펼쳐졌다. 당시 이들이 미래의 불안요소로 언급된 사안들은 무엇일까?

그는 “가장 두려워했던 테마는 의외로 다양했다”고 답했다.

“독일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지난 여름 역대 가장 건조한 여름을 보냈고 이로 인해 농작물 피해가 컸고 숲도 죽어가고 있으며 산림 화재는 발생 빈도가 과거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다. 2018년에 느낀 재정위기에 대한 두려움도 여전히 존재했다. 난민 유입도 빼놓을 수 없다.“

■ "토론의 장서, 세대 갈등 첨예"

그는 또 “토론 과정에서 갈등이 아주 많았다”며 “특히 나이대별로 그 갈등이 첨예했다”고 부연했다.

“일례로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여권이 필요없다. 콘센트와 노트북만 있으면 다 연결된다고 생각한다면, 연장자들은 콘센트만 꽂는다고 다 해결되는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전기가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떠한 사회 계층이 그 전기를 만들고, 또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을 따졌다. 연장자들은 강력한 국가를 원했고,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주길 바랐다. 반면 젊은 세대는 국가의 보장보다는 개인들끼리 딜을 해서 알아서 살면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에 대한 관심도 컸다”고 덧붙였다. 제작진이 만든 가상의 타임라인을 보면 2020년 이방카 트럼프가 아버지의 후임으로 대통령에 선출되고, 캘리포니아는 독립을 선언한다고 적혀 있다.

바이엘 연출은 “마치 과거 왕조처럼, 권력구조가 세습되는 현상이 있는데, 그러한 권력구조를 미국 사례로 보여주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당시 리서치 기간에 나와 이를 가볍게 적용해봤다. 그 내용이 극에 반영된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독일의 홈볼트 포럼과 함께 한 프로젝트라, 내년이나 내후년에 연극을 매개로 다시 한 번 미래를 논하는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다.

바이얼 연출은 “마지막 심포지엄을 끝으로 프로젝트가 막을 내린다”며 “그때 가장 큰 화두는 기후변화가 될 것이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각 국가의 역할, 재정조달 방법 등에 대한 토론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렛 뎀 잇 머니’는 새하얀 소금이 깔린 무대 위로 검은 옷을 입은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렛 뎀 잇 머니’라고 불리는 저항단체로, 2028년 현재 유럽 사상 최대의 위기가 찾아오게 된 이유를 조사하고, 정치가, 자본가, 권력자들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묻는다.

급기야 이들은 지금의 위기와 관련,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 책임자들을 납치하고, 이를 라이브방송을 통해 생중계하면서 시민들과 소통한다.

바이엘 연출은 “세상의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풀어보고자 한 프로젝트"로 “큰 도전이었다”고 회상했다.

“우리는 예술가이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예술가도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예술 분야에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최고 속도로 벽을 향해 달려가는 ‘충돌시험용 마네킹’과 같은 존재로 역사를 반복할 것”이라는 게 바이얼 연출의 생각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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