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우선" vs. "기준 제한"...DNA법 개정 표류하나
2019.09.24 15:05
수정 : 2019.09.24 15:0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33년만에 화성연쇄살인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씨(56)를 확인하는데 유전자(DNA) 정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내년부터는 수사에 활용이 어려워 질 수도 있다. 지난해 관련법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으면서 개정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대체법 통과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등은 개정안을 통해 DNA 채취 시 당사자의 의견진술 및 영장 불복 절차를 보장하고, 대상을 재범 가능성이 높은 강력범죄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채취 영장에 불복 기회 줘야"
2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대한 개정안 2건이 상정돼 있지만 모두 소관위에서 논의가 멈춰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영장 발부 시 채취 대상자의 의견 진술, 불복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DNA 채취 과정에서 당사자가 거부해도 영장을 통해 채취를 강제 집행할 수 있는데다, 영장 절차도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등이 펴낸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영장을 발부받아 DNA 정보를 채취한 경우는 전체의 0.5%에 불과했다.
시민단체 등은 당사자의 의견 진술 기회와 거부 절차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수사기관이 대상자의 동의를 얻으면 DNA 채취에 영장이 필요 없는 점을 악용해 사실상 동의를 강요하거나, 범행현장 인근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취를 하는 등의 악용사례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력범죄 외에도 체포·감금, 주거침입·퇴거불응 등 채취 대상 범죄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이들 항목이 그간 집회 참가자의 DNA채취 근거로 사실상 악용돼 왔다는 주장이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이상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중대한 개인정보를 담은 DNA를 재범이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만 채취하라는 취지"라며 "영장이 잘못 발부될 가능성도 염두를 둬, 불복 절차를 두라는 것이 (DNA법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공익적 목적이 우선시 돼야"
수사기관에서는 개정될 DNA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살인·강간·성폭력·방화 등의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공익적 목적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지부진했던 DNA법이 지난 2010년 통과된 것도 연쇄살인범 강호순이나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흉악 범죄를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박완수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범죄관련 DNA 데이터를 활용해 수사가 재개된 사건은 지난해까지 5679건에 달했다.
특히 장기 미제 사건의 경우 오랜 기간 보관되는 수형자의 DNA 정보가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DNA 채취가 어려워질 경우 수사의 효율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강력범죄에 대한 유전자 관리는 재범을 막고, 신속한 검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취지에 맞게 개정을 하더라도 DNA 채취·보관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관련법 개정을 통해 검찰과 경찰·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각각 보관 중인 DNA 정보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경찰과 국과수는 구속피의자와 범죄현장 DNA 정보를 가지고 있고, 수형자 DNA는 검찰에서 관리 중이다.
관리 및 운영주체를 단일화한 영국·독일·프랑스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수사권 조정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경찰도 원활한 수사를 위해 DNA정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