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히스레저는 잊어도 좋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2019.09.27 16:52
수정 : 2019.09.27 16:5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영화 ‘다크 나이트’(2008)에서 배트맨의 숙적 조커를 연기한 후 절명한 故 히스 레저. 죽어서 전설이 된 그의 ‘조커’를 잊게 할 명연기가 펼쳐진다.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영화 ‘조커’는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답게 독창적인 서사와 광기 어린 연기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이 작품은 DC코믹스의 가장 클래식한 악당이자 영원한 조연을 스크린에 주인공으로 초대하며 코믹스 영화의 새 지평도 연다.
클로즈업의 지나친 사용, 음악의 과잉 등이 배우의 연기나 극의 몰입을 다소 방해하지만 조커가 어떻게 다층적 인격의 악당이 됐는지, 그 기원이 위태로우면서도 매혹적으로 그려진다.
‘배트맨 비긴즈’라는 영화 제목을 빗대 ‘조커 비긴즈’라고 부를 만하다. 영화 ‘조커’는 여러 의미로 해석 가능한 단어 ‘조커(Joker)’처럼 농담 잘하는 익살꾼이 되고 싶었으나 이벤트 업체의 광대로 일하다 예측불허의 악당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범죄 도시 고담에서 병약한 엄마와 단둘이 사는 아서는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불쑥 터지는 웃음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사고, 폭력 청소년에게 맞거나 동료 광대들에게 놀림을 당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일어난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내면의 어둠에 눈뜨고, 현실의 아서가 아니라 가면 속 자신에게 주목하는 세상에 왠지 모를 희열을 느낀다.
도시의 차가운 뒷골목과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배회하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불편하지만, 연민과 두려움을 자아내며 심약한 인간에서 사이코패스로 변모하는 주인공의 여정을 끝까지 지켜보게 몰아간다.
호아킨 피닉스가 무려 23kg이나 감량해 만든 앙상한 몸은 그 자체로 기괴한 에너지를 품어낸다. 호아킨이 즉흥 연기를 펼친 것으로 알려진 공중 화장실 댄스신 등 가상의 인물이 되기 위한 배우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아서의 집근처 계단신이 백미다. 극 초반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끝 모를 계단을 오르던 아서의 뒷모습은, 극 후반 180도 달라진 인격의 조커가 조커 분장을 한 채 춤을 추며 내려오면서 ‘아서의 죽음, 조커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커’는 캐릭터가 탄생한 기존 DC코믹스와 독립된 서사를 가지면서도 DC코믹스와 연결돼 있다. 조커가 향후 배트맨이 될 꼬마 브루스 웨인을 만나거나 아캄 주립 병원을 찾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극 후반 브루스의 부모가 폭도의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은 배트맨의 탄생을 떠올리게 한다.
‘행오버’ 등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들던 토드 필립스 감독이 “내 삶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코미디였다”며 범죄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로 결정한 희대의 악당 ‘조커’를 연출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10월 2일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