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오색 단풍? 은빛 억새? 둘 다 있는 합천
2019.10.25 04:00
수정 : 2019.10.25 03:59기사원문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한은 '택리지'에서 합천의 가야산을 경상도 제일의 명산으로 꼽으면서 이같이 소개했다.
가야산 산자락 아래 해인사가 자리하고 가을이면 계곡까지 붉은 단풍에 물든다는 홍류동이 지난다.
은빛 억새가 출렁이는 황매산과 함께 아련한 추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합천영상테마파크도 빼놓을 수 없는 가을여행지 중 하나다.
마침 대장경테마파크에선 기록문화축제도 열려 가을을 한껏 만끽하고 싶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억새가 출렁이는 황매산
해발 700~900m의 드넓은 평원에 철쭉이 만발해 마치 꽃분홍 이불을 덮은 듯 아름다운 황매산의 봄은 여행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정도다. 하지만 이것이 황매산 절경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매년 10월 가을햇살이 여물 때쯤이면 산등성이 전체에 솜털 같은 은빛 억새가 피어오른다. 은빛 억새가 물결을 이루면서 바람 따라 출렁이는 풍경은 황매산이 마련한 또 한 번의 절경이다.
높이 1108m의 황매산은 소백산맥에 속하는 고봉이다.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며, 700∼900m 고위평탄면 위에 높이 약 300m의 뭉툭한 봉우리를 얹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북쪽 비탈면에서는 황강 지류들이, 동쪽 비탈면에서는 사정천이 발원한다. 주봉우리는 크게 하봉·중봉·상봉으로 나뉜다. 삼라만상을 전시해 놓은 듯한 모산재(767m)의 바위산이 절경으로 합천팔경 가운데 제8경에 속한다. 주민들은 잣골듬이라고도 부르며 '신령스런 바위산'이라는 의미의 영암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위산에 산이나 봉이 아닌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의 재라는 글자가 붙은 것이 특이한데 모산재의 옆과 뒤에 여러 개의 고개가 있고 재와 재를잇는 길 가운데에 산이 위치한 탓에 산보다는 재로 인식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삼라만상의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바위산의 절경으로 유명한 산이면서도 주능선 부분은 풍화작용으로 인해 넓은 평지를 이루고 흙이 두텁게 깔려 있으며 숲이 우거져 있다. 돛대바위는 높은 쇠사다리 위의 넓은 암릉 끝에 돛대처럼 우뚝솟아 있다. 정상에는 한국 제일의 명당자리로 알려진 무지개터가 있고, 북서쪽능선을 타고 펼쳐지는 황매평전의 철쭉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황매산은 오르기 쉬운 산에 속한다. 해발 850m에 오토캠핑장이 자리해 있어 여기에 주차할 경우 정상인 황매봉 초입까지 걸어서 20~30분이면 충분히 오른다. 황매봉까지 오르는 길이 가파르긴 하지만 길이도 짧고 데크와 나무계단이 이어져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홀로 우뚝 솟은 황매봉 아래는 과거 목장이었을 만큼 경사가 완만하다. 드넓은 평지엔 봄에는 철쭉, 가을엔 억새가 피어오른다. 여기저기에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의자도 많아 어르신은 물론 아이와도 부담 없이 둘러보기 편하다. 탐방로 대부분이 널찍하고 바닥이 단단하기 때문에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해도 편리하게 이동이 가능하다. 다만 비가 내린 직후엔 탐방로를 제외한 억새군락지 안에는 진흙 때문에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정상부근에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바람이 심한 날에는 황매봉 출입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황매산오토캠핑장 입구 간이휴게소에서는 산채비빔밥과 도토리묵, 해물파전 등을 파는 매점이 있다. 아침 일찍 또는 점심 전에 황매산에 올랐다면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해도 좋다. 캠핑장을 사용하고 싶다면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된다. 억새가 흐드러진 10월은 성수기로 지정돼 주말엔 거의 빈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문화재 관람에 관심이 많다면 황매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영암사지를 들러 봐도 좋다. 보물로 지정된 귀부와 쌍사자석등, 삼층석탑을 만날수 있다.
■합천군기록문화축제
가야산 입구에 자리한 대장경테마파크는 지난 2011년 팔만대장경 간행 1000년을 기념해 조성됐다. 16년에 걸친 팔만대장경의 제작과정과 강화도에서 해인사까지 이어진 대규모 이운 행렬, 화재와 전쟁 등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700년 넘게 온전히 보관되고 있는 보존과학의 비밀 등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관람객의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는 해인사와 달리 어린이대장경, 대장경빛소리관 등 팔만대장경의 가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기록문화관에선 주말과 공휴일을 이용해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
해인사에서 대장경테마파크까지 이어지는 소리길도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다. 전체 코스는 5.8km이지만 대부분 경사가 완만한 숲길이거나 데크가 놓여 부담 없이 걸을만하다. 특히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물에 비쳐 계곡 전체가 붉게 보인다는 홍류동까지는 계절의 정취를 느끼기 더없이 좋은 구간이다. 해인사에서 이곳 홍류동 계곡까지 왕복할 경우 넉넉잡아 2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소리길을 가볍게 걷고 싶은 여행객들에게 추천한다. 해인사에서도 템플스테이를 운영중이지만 고즈넉한 가야산 자락에서 하룻밤 머무르고 싶다면 한옥스테이도 좋은 선택이다. 마당 한편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걸음을 쉬어가기에도 좋다.
대장경테마파크 일원에선 11월 3일까지 2019 합천기록문화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 준비한 실내 콘텐츠로는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 VR체험, 도예체험 등 실내 행사와 초청가수 및 댄스 공연 등이 준비돼있다. 야외에서는 가을꽃 전시, 김영환장군 수호비행기 전시, 대형 한글대장경판 전시 등 다양한 볼거리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대장경테마파크 야외특설무대에서는 매 주말 팝과 오페라가 조화된 팝페라 공연과 창작타악 공연, 가을과 잘 어우러지는 통기타 공연, K팝 댄스 공연은 물론 직장인밴드 공연과 국내외 전통무용 공연도 마련된다. 대장경테마파크 체험존에서는 고려복식 문화와 팔만대장경 이운행렬을 재현하며 대장경 인쇄 체험과 서예가가 써준 가훈을 받아 갈 수도 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