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여행사 직원, 판매시스템 조작 3년반 동안 5억원대 티켓값 빼돌려

      2019.11.03 10:30   수정 : 2019.11.04 13:24기사원문
모두투어 여행사에서 예약 관리 및 고객 전화 상담업무를 보던 여모씨(34)는 A씨가 돈버는 방법을 보고 무릎을 쳤다. A씨는 인터넷 오픈마켓 사이트에서 모두투어가 판매하는 일본 관광지 입장권, 교통 패스권 등을 대량으로 싸게 산 뒤 이를 여행자들에게 다시 팔아 차익을 거둬왔다.

■시스템 허점 악용, 티켓값 빼돌려

3일 판결문에 따르면 여씨는 2016년 1월 생면부지의 A씨에게 연락해 '내가 개인적으로 보유한 모두투어 관광 티켓을 팔겠다'는 취지로 제의했다.

A씨가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 간의 거래는 지난해 4월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여씨가 A씨에게 판매한 티켓들은 본인 소유가 아닌 모두투어의 판매관리시스템을 임의로 조작해 보낸 것들이었다.


여씨의 범행은 더 대담해졌다. 그는 고객이 관광 티켓을 구매했다가 취소해도 고객에게 티켓이 발송된다는 점을 악용했다. 여씨는 A씨에게 '이제부터 직원가로 티켓을 사려면 모두투어 오픈마켓에서 주문해야 한다'고 속인 뒤 티켓값은 자신의 계좌로 송금하도록 했다. A씨가 주문을 하면, 여씨는 몰래 이를 취소한 뒤 티켓값만 받아 챙겼다. 티켓값이 여씨의 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내부전산 시스템상 기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범행은 같은 해 10월까지 이어졌다. 여씨는 이러한 수법으로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총 492회에 걸쳐 5억5000여만원의 티켓값을 챙겨 생활비·유흥비·채무 변제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꼬리가 너무 길었을까. 여씨의 횡령은 결국 덜미가 잡혔고, 모두투어는 A씨도 범행에 공모했다며 두 사람을 함께 고소했다.

여씨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5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다만 검찰은 A씨에 대해서는 "여씨와 횡령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법원 "여씨만 3억6000만 배상"

모두투어는 이후 여씨가 변제한 1억3000만원과 보험금 6000만원을 지급받았으나 손해액을 회수하기 위해 여씨와 A씨를 상대로 6억5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지난 2월 제기했다.

모두투어 측은 여씨가 횡령한 티켓의 판매 예정가 합계인 8억4000여만원을 총 손해액이라고 판단한 반면, 여씨 측은 형사재판에서 횡령액수로 확정된 5억5000여만원이 모두투어의 손해라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김인택 부장판사)는 "여씨만 모두투어에 약 3억6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모두투어는 쿠폰 할인 등 판매 예정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티켓을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며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횡령금액을 초과하는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 손해액에 대해서는 여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A씨에 대한 청구에 대해서는 "여씨와 횡령 범행을 공모했다거나 이를 고의로 방조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거래 전 여씨를 몰랐던 A씨로서는 유명 여행사가 직원의 횡령을 방치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또 모두투어가 여씨의 업무를 감독하지 못해 손해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행위와 모두투어의 손해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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