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에 삶이 보인다 … "30대 고민 담아냈죠"

      2019.11.04 17:23   수정 : 2019.11.04 17:23기사원문

단정하게 쪽진 머리에 속이 보일듯 말듯 비치는 한복 치마를 입고 뾰로통한 표정을 짓던 그림 속 여인이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가 돼 돌아왔다.

한국화가 김현정씨(30·사진)는 젊은 나이에 남들과는 다른 기법과 자신만의 해학을 담은 한국화를 그려내 한국화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젊은 화가 중 한명이다.

지난 2017년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김연아 선수와 함께 선정된 김 작가는 고상한 한복을 입고 현대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장면들을 한국화로 위트있게 표현해 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LG생활건강, IBK기업은행, 한국마사회 등 여러 기업·단체들과의 협업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선보인 김 작가의 작품을 신용카드에 입힌 우리카드의 '카드의 정석' 시리즈는 500만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김 작가의 화폭에 담긴 한복은 서양의 콜라주 기법과 동양의 수묵담채 기법으로 표현된다. "한복의 자수를 표현하는 건 옛날 왕의 어진을 표현할 때 쓰이던 기법으로, 그 부분은 장인을 찾아가 따로 배우고 한지를 염색하는 것도 염색 장인께 따로 배우는 과정을 거쳤어요. 집합체같은 결과물이죠." 김 작가는 한지 위에 선명한 색을 내기 위해 색을 한 번 입힌 후 마를 때까지 다른 그림을 동시에 그려 최고 6개의 화폭을 같은 시기에 작업하기도 한다.

최근 김 작가는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사회적으로 결혼을 요구받는 나이인 서른이 된 김 작가는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그리고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에 직면했을 때 마주해야 하는 고민을 디즈니시리즈와 세계 명화를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표현해 냈다.
"그림만 봐도 제 삶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일상을 위주로 그리다 보니 결혼에 대한 생각도 해보면서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육아전쟁까지 결혼 이후의 삶을 담았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패러디한 그의 '생각하는 신부'는 자개함 위에 앉아 사주단자를 손에 쥔 채 생각에 잠긴 신부의 모습을 그려냈다.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그림 '웰컴 투 시월드'에서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뒤로한 채 절규하는 모습을, 성모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형상화해 뽀글머리에 고무장갑을 끼고 피로에 지쳐 쓰러진 미래의 자신을 내려다보는 현재의 신부를 그려낸 '피로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뿐만 아니라 전시·강연·봉사활동 등으로 누구보다 바쁜 20대를 보낸 그녀에게 30대는 어떤 모습일까.

"일기같은 그림을 그렸던 터라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계산하고 싶지도 않고 솔직하게 해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아마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결혼한 후의 삶 또는 육아를 표현할 것 같아요." '올해 우리 딸이 시집가는 것이 소원'이라는 김 작가 어머니의 말처럼 그녀에게도 곧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 본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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