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 사임…집권 14년만의 불명예 퇴진

      2019.11.11 15:38   수정 : 2019.11.11 15:3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중남미 좌파 진영의 최장수 지도자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선거 부정 논란 속에 결국 물러났다. 중남미 정계를 주름잡아온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시대가 마침내 종식되어 간다는 우려에 중남미의 좌파 정권 수장들은 이번 퇴진을 '쿠테타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규탄 성명을 냈다.

■원주민 출신 첫 대통령, 권력욕에 몰락 자초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모랄레스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하고 의회에 사의를 전달했다.

지난 2006년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 선출돼 14년 넘게 집권해온 그는 지난달 20일 대통령 선거에서 40%를 득표하며 야권 후보인 카를로스 메사를 10%P 차로 따돌리며 4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개표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개표 초기부터 모랄레스 대통령과 메사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7%P 대였으나 갑자기 개표가 중단됐다 재개된 후 10%P 이상 차이가 난 것으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에서는 개표 과정에서 10%P 이상 차이가 나면 당선이 확정된다. 이에 국민들 사이에서 개표 결과가 조작됐다는 의혹과 불만이 터져나왔고 이후 3주간 모랄레스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볼리비아 각지에서 벌어졌다. 시위 기간 동안 경찰들도 곳곳에서 모랄레스 정권에 항명하는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고 거리마다 '모랄레스는 독재자'라는 현수막이 붙기도 했다.

3주 간의 시위 기간 동안 3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의 여론이 등을 돌렸음에도 모랄레스는 이날 아메리카 지역 35개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미주기구(OAS)가 볼리비아의 대선 과정에서 여러 부정 행위가 발견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자 재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히며 권력에 대한 끈을 놓치 않으려 했다. 하지만 야당을 비롯해 경찰과 군부가 국영 TV를 통해 모랄레스의 사퇴를 종용하면서 수시간 후 퇴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편 모랄레스 대통령과 함께 사임을 발표한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은 부정 선거 의혹을 인정하지 않은 채 "우리들은 쿠데타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핑크 타이드' 붕괴하나.. 인접국 초긴장
볼리비아 최초로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그는 집권 초기엔 천연가스 시설을 국유화 하는 등 빈곤 해소에 기여해 인기가 높았다. 재임 시절 그는 볼리비아의 경제성장률 4%대를 유지하면서 2014년 국민총생산(GDP)를 3000달러 대까지 끌어올리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남미를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 정권들이 퇴조하는 가운데에도 모랄레스의 지지기반은 굳건했고 마지막 핑크 타이드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장기 집권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면서 스스로 퇴락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2016년 2월 개헌 국민투표를 진행했지만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모랄레스는 헌법소원을 통해 4선 도전을 강행했으나 결국 국민들의 정권 퇴진 시위를 통해 물러나게 됐다.

한편 모랄레스의 퇴진에 인접국가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차기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 등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은 이번 사건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비난하며 모랄레스와 연대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멕시코는 모랄레스 대통령에게 망명을 제안하기도 했다.
반면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만이 "쿠테타라는 말은 좌파가 무너질 때 많이 쓰이는 말"이라며 "좌파가 이기면 합법이고 그들이 지면 쿠테타라고 말한다"라고 밝히고 퇴진을 반겼다.

CNN은 중남미 국가 좌파 수장들의 이러한 비난은 볼리비아의 혼란이 중남미 전체로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NYT는 모랄레스 대통령의 퇴진은 최근 중남미를 사로잡고 있는 불안한 정국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하며 중남미의 지도자들이 경기 부진과 심화되는 양극화로 인해 들끓는 거리의 대규모 민심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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