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사태

      2019.11.12 17:53   수정 : 2019.11.12 17:53기사원문
남미 정치지형 변화가 현기증이 날 정도다. 2000년대 이후 대륙의 서쪽 벨트에는 경제와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칠레, 페루 등 '태평양 동맹국'들이, 동부라틴 쪽에는 브라질·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등 반미성향 '메르코수르 동맹국'들이 자리 잡았다. 이런 지경학적 모자이크는 최근 확 바뀌고 있다.

14년 장기집권한 볼리비아 좌파 정권이 피플파워에 굴복하고, 칠레 우파 정권은 지하철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로 곤경에 처하면서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10일 사임, 좌파가 집권 중인 멕시코로 망명길에 오른다.
그는 2006년 첫 원주민 대통령이 된 이후 천연가스 수입 재분배정책 등으로 서민층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 연임 제한규정을 어기고 4선에 도전하다 개표조작 시비까지 자초했다. 민심이 그에게 등을 돌린 표면적 이유다.

그가 몰락한 근본 요인은 '좌파 포퓰리즘' 정책의 지속가능성에 켜진 의문부호일 듯싶다. 볼리비아는 석유, 천연가스에다 은, 주석 등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특히 우유니 사막엔 배터리 등 첨단산업 소재인 리튬이 지천으로 묻혀 있다. 그러나 해외자본을 '어머니 대지법'이라는 강력한 자연보호법으로 묶는 바람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성장률 등 경제지표가 그리 나쁘지 않은데도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느냐"는 등 노동자들의 아우성이 커져 가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모랄레스의 하차가 한때 남미를 휩쓸었던 이른바 '핑크 타이드'의 퇴조를 가리킨다고 보긴 어렵다. '레드 타이드(붉은 공산화 물결)'에 비해 중도적인 좌파 흐름을 뜻하는 '분홍색 물결'이 되살아나는 기미도 있어서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승리한 게 단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남미 대륙의 정치적 혼돈의 함의는 분명하다. 좌파든 우파든 달콤한 구호 말고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달라는 요구다.
다시 말해 실제적으로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권에 대해 남미인들의 인내심이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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