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은행규제법 ‘볼커룰’ 장본인 볼커 前 연준 의장 타계
2019.12.10 11:16
수정 : 2019.12.10 11:16기사원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재임 시절 살인적 미국의 물가를 잡았으며 세계 금융위기 발생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은행규제법인 ‘볼커룰’을 주도한 폴 볼커가 지난 8일(현지시간) 타계했다고 외신들이 그의 가족과 재단을 인용해 보도했다.
올해 92세인 볼커는 뉴욕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그의 딸 재니스 지마와 볼커 얼라이언스 재단이 발표했다.
볼커는 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연준 의장을 포함해 등 미국 대통령 6명이 거치는 동안 재무부와 연준 관리, 경제 고문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키가 2m의 거구인 볼커는 지난 1927년 미국 뉴저지수 케이프메이에서 태어나 1949년 프린스턴대 학부를 졸업한후 1951년 하버드대에서 정치경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후 1952년까지 런던 정치경제대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1952년 첫 직장인 뉴욕연방은행에 경제전문가로 입사해 체이스맨해튼은행, 미국 재무부를 거쳐 다시 체이스로 복직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 미 재무부에서 통화담당 차관으로 재직하면서 1971년 브레튼우즈 협정 체제 종식에 기여했다.
1975~79년 뉴욕연방은행장을 지낸후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연준 의장에 임명된 볼커는 1980년 3월 14.8%까지 치솟은 미국의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1981년 7월에 22.36%까지 올리기도 했다.
그후 2년내 미 물가상승률은 3% 이내로 떨어졌으나 높은 금리로 미국 경제는 1981~82년 당시 최악의 침체에 빠지고 1982년 실업률이 10.8%까지 상승했으며 부실 대출과 파산이 속출했다. 이로인해 그는 농민과 주택건설업자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면서 엽총과 권총, 칼로 무장해 연준 건물에 침입한 청년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뻔했다.
지난 1987년 볼커는 세번째 연준 의장 임기 제안을 사양하고 앨런 그린스펀에 자리를 물려줬다. 이 당시 미국의 기준금리는 6.75%, 인플레율은 4%에 미 경제는 5년째 성장세를 보였다.
볼커는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회복 자문위원회를 이끌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상업은행들이 리스크가 큰 투자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인 ‘볼커룰’ 채택에 기여했다.
윌리엄 풀 전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장은 볼커의 대담한 통화정책이 없었더라면 미국 경제가 계속해서 추락했었을 것이라며 그가 전임자들의 정책을 수정함으로써 미국 경제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확장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은 볼커가 공직에 대한 헌신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 강력하고 효과적인 은행 규제, 높은 윤리 기준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연준 직원들에게 공감의 대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를 연준 의장에 임명한 카터 전 대통령은 "폴이 고집이 강했고 그의 통화정책이 정치적으로 대가를 치뤄야 했지만 당시 올바른 선택이었다"며 볼커의 국가에 대한 헌신을 높게 평가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