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으로 무대 휘젓는 양희경 "알고보면 난 조용한 사람"
2019.12.16 16:52
수정 : 2019.12.16 16:52기사원문
올 연말, 중년 여성들에게 유쾌하고 통쾌한 감동 보따리가 찾아온다.
양희경은 "성병숙의 제의로 연극 '안녕, 말판씨'를 하게 됐고, 비슷한 시기 '여자만세2'를 제안받아 병숙에게 바로 빚을 갚았다"며 웃었다. "윤유선은 자주 만나는 배우 친구 다섯 명 중 한명이다. 병숙의 딸 서송희는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 거짓말하고 공연장에 와 제 엄마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친구들끼리 함께해 좋은데, 정작 만날 수는 없네. 성병숙은 공연 날짜가 달라 한 번도 못보고, 윤유선은 (더블캐스팅이라) 가끔 본다."
이여자는 브라운관에서 봐온 털털하고 유쾌한 이미지의 양희경 그대로다. 양희경은 "어릴 적부터 춤과 노래는 잘했다"면서도 "그런데 사실 성격은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크고, 김수현 드라마에서 회오리바람처럼 온가족을 다 뒤집어놓은 역할을 해 그런가? 다들 내가 성격이 밝고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혼자 책 보거나 요리하는 거 좋아하는 서정적 성향과 차분한 성격이다. 엄마의 손재주를 닮아 뜨개질이나 자수도 즐겨했으나 이젠 눈이 나빠져 못하고, 요리만 즐겨 한다."
무대에서는 모성애 넘치는 엄마를 자주 연기했다. 올해만 '자기 앞의 생'에 이어 '안녕, 말판씨' 그리고 '여자만세2'까지 아랫세대를 너른 마음으로 품어주는 아줌마·할머니로 열연했고, 곧 엄마로 분한다. 양희경 역시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며느리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특히 지금은 장성한 두 아들이 한창 어릴 때 집안 가장의 역할을 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도 삼시세끼 따뜻한 집밥을 해 먹였다. 양희경은 "당시 출연료도 넉넉지 않았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집 밥뿐이었다"며 "급식도 없던 시절 도시락까지 쌌으니까, 애들이 지금도 그건 높게 쳐준다"고 했다. "요리는 요즘도 즐겨 한다. 대본을 외우다 머리가 뜨거워지면 싱크대로 가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며 쿨다운시킨 뒤 다시 대본을 외운다." 양희경은 인터뷰하던 이날도 손수 싼 도시락을 들고 왔다.
"이여자가 자칭 댄스의 달인이다. 내가 30대 후반까지 재즈수업을 들었다. 동네에서 에어로빅하면 순서를 금방 외워 늘 앞줄에 섰다. 초등학생 때는 매스게임 시범을 도맡아했고, 제동초 교가도 (언니인 가수) 양희은의 뒤를 이어 내가 불렀다.(웃음)"
어릴 적부터 자매끼리 춤추고 노래하고 역할극하는 게 일상이었다는 그는 "무대에 서는 일 자체가 그저 어린 시절 집에서 한 일과 같다"고 말했다. "관객이 30명이건 3000명이건 내겐 크게 다르지 않다. 무대 자체가 마치 고향집 같고, 편안한 공간이다."
타고난 배우 같지만 배우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단다. 막연히 간호사나 현모양처가 될 줄 알았는데 대학입시에 실패한 뒤 언니가 서울예대 진학을 추천했다. 부랴부랴 준비해 응시했는데 차석으로 붙어 수석으로 졸업했다. 양희경은 "대학 다닐 때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며 "오전 9시에 수업해 오후 5시에 끝나면 그날 밤 10~11시까지 공연연습을 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다니 생각하며 정말 즐거워했다"고 회상했다.
"일도 좀 쉬엄쉬엄해야 한다. 젊어서 에너지를 다 쓰면 늙어서 고생한다. 게다가 내가 좀 완벽주의자다. 올해 '자기앞의 생'도 과거에 크게 감동받은 작품이라 고심 끝에 출연했다. 작업하는 과정은 아주 고통스러웠지만 보람차게 잘 끝났다." 지난 세월 무엇이 가장 아쉽냐고 묻자 그는 "아이들 어릴 적에 가장 노릇하느라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게 아쉽다"며 "워킹맘에게 '짧더라도 굵게'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라"라고 조언했다. '여자만세2'는 잘 만든 소극장 공연을 발굴·업그레이드해 선보이는 예술의전당의 연극 육성 프로젝트 '창작키움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