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2년 퇴사만 4번 '부적응자'에서 매출 4억 CEO로
2019.12.25 07:00
수정 : 2019.12.25 20:39기사원문
[편집자주]90년대생들이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소비 주체로, 또 함께 일하는 동료로, 까다로운 유권자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세대와는 확연히 구분이 사고방식과 소비행태를 보입니다.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꿈을 달성할 것이라 굳게 믿고 성공한 장면을 상상하라' 1992년생 유재상씨의 SNS 프로필은 아침에 부장님들이 보내줄 것 같은 명언들로 가득했다.
유 씨는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에만 회사를 4곳 다녔다. 모두 3~6개월 만에 나왔다. 주변에서는 그가 적응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에게도 자존감이 무너지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와중 유 씨는 지난 6월 사업을 시작했다. 반년 만에 매출이 4억원을 돌파했고 이익도 남겼다. 이달에는 보란 듯이 이베이코리아의 '수출스타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 16일 유재상 에이치앤에스인터내셔널 대표를 만나 그의 도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인터뷰는 화상 통화로 진행됐다.
◇취업되는 곳에 무작정 입사했지만, 2년 새 4번 퇴사
대학생 때 유 대표도 다른 20대와 마찬가지로 '욜로'(YOLO,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에 심취해 있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타 쓰며 해외여행도 다니고 친구들과 술도 실컷 마셨다.
터닝 포인트는 대학교 졸업이었다. 부모님은 졸업을 기점으로 용돈을 끊었다. 아버지는 "네가 열심히 쟁취해 보라"고 했다. 유 씨도 남들이 다 아는 좋은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눈높이를 낮춰 일단 중소기업에서 일부터 시작했다.
대기업·공무원을 지망하며 취업 재수, 3수를 거듭하는 또래들과는 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907만 명) 중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며 취업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은 71만4000명에 이른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첫 번째 회사는 막상 계약서를 쓸 때가 되니 면접 때와는 다른 연봉 조건을 제시했다. 두 번째 회사는 부산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기로 했던 그를 충북 충주에 있는 공장에 보내 공장일을 시켰다.
두 회사 모두 3개월 만에 나왔다. 유 대표는 "냉정하게 말하면 욕심만 많아서 회사를 계속 옮겨 다닌 것"이라고 자신을 평가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청년이 첫 직장으로 소기업에 취업했을 경우 약 50%가 2년 내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토록 싫어하던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유 대표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변화를 결심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명언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명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 옮겨 다니며 창업기회 모색…밥값 아껴 사업자금 마련
유 대표에게는 창업의 꿈이 있었다.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유 대표는 "작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빨리 배우고 언젠가 내 사업을 하게 되기를 꿈꿨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조사에 따르면 20대 이하는 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창업한다'(기회형 창업, 47.3%)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창업한다'(생계형 창업)는 응답은 19.3%에 불과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기회형 창업의 비율은 줄었다.
유 대표는 "친구들 대부분은 회사나 공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전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대 중 '창업을 생각해 보았고 실제로 창업을 했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창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비율은 77.1%였다.
그는 사업을 배우기 위해 회사를 2곳 더 다녔다. 무역 관련 회사들이었다. 회사에 다니며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유 대표는 "이직을 계속하면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무엇이라도 해서 무엇이라도 배우고자 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한정판'을 조달해 이베이·아마존 등을 통해 전 세계에 팔았다. 화장품 판매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차별화한 것이다. 주로 국내 화장품 회사들이 직접 진출하지 않은 미국·영국·호주 등 서구권 고객들이 그의 화장품을 주문했다.
회사를 다니며 모은 2000만원을 종잣돈으로 삼았다.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아끼고 또 아꼈다. 그는 "돈이 한 푼도 없을 때는 이웃집에서 남긴 배달 탕수육을 주워 먹은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창업 초기 5개월 동안은 자취하던 원룸에서 작업했다. 에어컨도 없는 방이었다. 한여름에도 하루에 7~8번 샤워하며 더위를 참았다. 그는 "선풍기를 틀면 포장 속도가 느려져서 선풍기도 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올해 국내 최대 온라인 유통기업 이베이코리아의 '수출스타 경진대회'에서 대회 참여 판매자 3400명 중 가장 많은 수출액을 기록, 대상을 받았다. 창업 6개월 만에 거둔 성과였다.
이베이 측은 "한정판 화장품 및 완구 등을 할인가에 빠르게 공급한 기민함과 즉각적인 고객 응대가 매출 증대 요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수상은 그의 꿈을 이뤄가는 길 위에 놓인 작은 이정표였다.
유 대표는 "이번에 수상하면서 자체 브랜드 론칭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됐다"며 "앞으로도 크고 작은 실패의 경험을 쌓아가겠다"고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가 '패배자'일 수 있을까. 그저 그의 길이 남들과는 조금 달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