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세력만을 위한 정치, 진영논리 깨야 나라가 산다"

      2020.01.02 17:08   수정 : 2020.01.02 17:12기사원문
문재인정부 집권 4년차이자 21대 총선을 치르는 2020년이 시작됐다. 그러나 18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전 의장이 바라보는 오늘날의 정치권에 대한 시각은 '사라진 정치' '지도자들의 떨어진 경쟁력'으로 점철된 우려 그 자체였다. 집권여당과 보수정당 간 협상은 온데간데없이 싸움만 난무하고, 진영논리에 따라 갑자기 부각된 준비 안된 지도자들만 나오고 있다는 게 김 전 의장의 시선이다.


김 전 의장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임정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파이낸셜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과도한 진영논리에 빠진 정치권을 비판하면서 "우리나라가 이런 식으로 가면 정치 지도자들의 경쟁력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뒤떨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김 전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 주요 인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5선 국회의원이자 25년 이상 정치경력을 가진 원로로서 대한민국 정치권을 향한 고언을 쏟아냈다.


그는 청와대 핵심인사들에 대해서도 "진영논리에 갇혀 있어 항상 자기들 지지세력을 의식하고 있다"며 "빨리 이러한 구각(舊殼)을 깨뜨리지 않으면 위험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통하는 김 전 의장은 마무리를 앞둔 20대 국회에 대해 "가장 정치가 없었던 시기"라고 혹평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협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안이함을 보였고, 한국당은 함량미달 수준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대담 = 정인홍 정치부장

―문재인정부 들어 진영논리가 유독 부각되고 있다.

▲진영논리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정치권은 표를 많이 따야 되니 끊임없이 자기세력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적 성숙은 물론, 지도자 자질을 미처 키울 새 없이 어떻게 하면 지지세만 결집하고 상대를 때려잡느냐에 매몰됐다. 하루아침에 함량을 키우지 못하는 것과 달리, 우리 사회는 급하게 변하다 보니 진영논리 작동으로만 연결된다.

―우리나라가 유독 변화가 빠른가.

▲그렇다. 정치 문제로만 보면 우리나라처럼 국회의원 물갈이를 많이 하는 나라가 없다. 총선 한번에 국회의원 절반이 바뀌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장관들, 차관들 임기도 보통 1년 정도다. 예전 장관 경질사유 중 하나가 너무 오래 해서라고 한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빨리 바뀐다.

―빠른 변화 탓에 준비 안된 지도자가 나온다는 것인가.

▲보수든 진보든 사회 발전속도에 비례해 자기를 가꿀 시간이 없었다. 결국 지도자는 자기를 함양하거나 성찰할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급한 게 진영논리다. 내편이냐 아니냐. 내편 아니면 배척한다. 우리끼리란 문화만 점점 심해진다. 결국 경륜을 갖춘 경세가가 극히 적다. 지금 정권은 정상보다 1년 이상 빨리 정권을 잡았다. 그러다보니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고민과 자기들의 숙고나 토론 과정이 없었다.

―문재인정부도 준비가 안됐다는 것인가.

▲이 정권은 문제가 경륜이나 숙고가 부족하다. 과거 정권에서 문제가 됐던 사람들을 잡아넣은 것까지 좋았는데 후속조치가 없더라. 적폐청산은 사람을 잡아서 감방 보내는 게 아니다. 잘못된 폐단을 바로잡는 게 적폐청산이다. 잘못된 폐단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다. 사람 잡는 데 시간을 다 보내다 보니 피로감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 이 정권의 국정지표가 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국민이 잘사는 나라', 이런 것은 추상적인 것이다. 뭘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정치권의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보나.

▲우리나라가 이런 식으로 가면 정치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경쟁력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뒤떨어질 것이다. 지도자가 어떻게 끌고가느냐에 따라 나라가 달라지는데, 지금은 지도자의 경쟁력 자체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 이게 우리의 불안요소 중 하나다.

―진정한 리더가 갖춰야 할 것이 있다면.

▲지금은 다 까발려지는 세상이라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를 갈고닦아야 한다. 안 그러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처럼 된다. 인간은 다 죄를 짓고, 뭔가 약하게 돼있고, 모순덩어리다. 크고 작은 부조리와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완벽한 인간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지도자가 되겠다면 자기성찰을 하라 이거다. 성찰을 하면서 부족한 것을 보완해나가면 된다. 완벽한 것보다 최선을 지향해 나갈 뿐이다.


―문재인정부 지지율은 여전히 40%대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 방식으로 문 대통령 지지도가 공고하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정부·여당이나 청와대에 지지율에 취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문재인정부 지지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이 잘돼야겠다 싶어 정권 인사들에게 조언도 하는데 잘 안 받아들인다. 청와대 핵심인사들이 진영논리에 갇혀 있어 자기들 지지세력을 항상 의식하고 있다. 빨리 이런 구각을 깨뜨리지 않으면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나라도 자기들도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현 시점에서 보수진영을 평가한다면.

▲문재인 등장 시점에서의 보수와 지금의 보수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등장 시점에서의 보수는 자기반성이 부족했다. 결국 보수가 갈라지고, 반성하지 않는 보수로 비쳐지고 있다. 이유 여하를 떠나 자기가 모신 대통령이 감방에 가고, 핵심인물들도 전부 감방 가고 정권이 뒤집어졌는데 내 책임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처음에 철저한 사과와 반성을 못한 보수라면 지금은 제대로 싸움을 못했다. 제대로 반성을 안했기에 다시 태어나지 못했고,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것이다.

―원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싶지만, 그릇이 부족하다. 한국당은 함량이 커져야 한다. 인적 그릇이 커야 하는데 전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찬바람, 비바람을 맞으면서 야생적인 것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갑자기 정권이 바뀌니까 어떻게 하지를 못한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지금이 온실이라고 착각한다. 싸울 때 싸우고 협상할 때 협상하고, 진퇴가 전략적으로 구사될 수 있어야 하는 게 야당인데 분명한 게 없다. 황교안 대표가 뒤늦게 발동이 걸려 요새 좀 싸우는 것 같지만 타이밍상 좀 늦은 게 아닌가 싶다.

―한국당의 현 투쟁력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쟁에서 참 어려운 게 퇴각하는 것이다. 지금 싸우고 있는 황교안 대표가 선회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전략적인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때다. 싸움은 왜 하나. 결국 이기려고 한다. 협상장에서 이겨야 한다. 협상장에 어떻게 가느냐가 참 중요하다. 정치인이 국회를 놔두고 들판에 나가는 것을 좋아할 국민들이 누가 있나. 결국 지금 들어가겠다고 하면 황교안 리더십 타격을 떠나 한국당이 타격받는다. 이럴 때 여당이 커튼 밑으로 손을 내밀든, 카드를 내밀어야 하는데 여당이 그렇게 할 능력이 되느냐.

―내년 총선에서 보수통합 깃발론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중간지대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사람들은 정치 불신, 정치에 대한 식상함이 있는 사람들이다. 민주당 지지에서 이탈했지만 한국당으로는 가지 않고 있다. 사람들만 모이는 것으로는 통합의 의미가 없다. 무엇을 내세우고, 어떻게 추진하느냐가 중요하다. 어정쩡하면 안된다. 제대로 된 메시지가 필요하다. 젊은세대들, 붕 떠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기 위한 매력적인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촉박하다. 기존 당 지지자들과 태극기부대로는 못 이긴다.

―20대 국회를 전반적으로 평가해본다면.

▲정치가 국민들에게 칭찬받은 적이 없었지만, 20대 국회를 한마디로 하면 '가장 정치가 없었던 시기'가 아닐까. 정치력이 발휘되지 않았고 정치적 리더십도 없는 20대 국회였다. 이런 국회가 된 것은 촛불로 등장한 민중주의적인 세력이 들어서 정치를 협상이나 대화로 풀려는 생각이 약해서다. 그저 상대는 타도 대상에 불과했다. (집권여당은) 민중주의적 입장에서 민중정치, 나쁘게 말하면 대중선동, 인기영합주의에 물든 사람들이다. 상대방을 테이블 앞에 같이 앉아 공론을 도출할 대상으로 애초에 보지도 않았다. 그러니 정치가 시작부터 기울어졌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대한 평가는.

▲정치를 살리는 게 국회인데 여야를 나눠서 책임 소재를 따지면 여당 책임이 크다. 역대 가장 바른 소리를 못하는 여당이었다.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전달 못하고 청와대 논리에 여당이 끌려가고 보완 역할을 못했다. 그러니 '청와대 출장소'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번도 청와대에 '이건 아니다'라고 한 적이 없다.
이건 한국 정치의 슬픈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정치가 살겠나. 보수도 철저한 반성을 해야 하지만, 여당도 안이하다.
이대로만 가면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안이함이 여전히 있는데 그러다 큰코다친다.

정리=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