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영업비밀 두고 엇갈린 중기부, 공정위

      2020.02.04 13:48   수정 : 2020.02.04 13:4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소기업 기술·경영상 정보(영업비밀)에 대한 제각각 정의를 내리면서 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더 많은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법을 완화하는 추세와 달리 두 기관은 법을 엄격히 유지해 중소기업 피해 구제에 뒷짐을 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관마다 엇갈린 중소기업 영업비밀 정의
4일 업계에 따르면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부정경쟁방지법) 소관부처는 특허청이다.

특허청은 지난해 7월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개정안에는 더 많은 기업들의 영업비밀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률상 영업비밀 정의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은 영입비밀을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비공지성)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비밀관리성) 생산방법, 판매방법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 정보(경제적 유용성)라고 정의한다. 특정 기업 정보가 법률상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위해선 위 3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중소기업 영업비밀 보호 범위 확대 핵심은 ‘비밀관리성’이다. 종전 부정경쟁방지법은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영업비밀만 보호했다. 하지만 상당한 노력으로 영업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회사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기업이었다. 경제적 요인 등으로 영업비밀 관리가 어려운 중소기업은 보호받지 못했다. 때문에 2015년 법개정을 통해 합리적 노력에 의해 유지되도 영업비밀로 인정했다. 이제는 비밀로 관리만 되면 영업비밀 요건이 성립된다.

문제는 부정경쟁방지법이 더 폭넓게 중소기업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개정됐지만 나머지 중소기업과 밀접한 법률이 과거 기준대로 엄격하게 영업비밀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사실상 과거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정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기술보호지원에관한법률(중기기술보호법)은 중소기업기술침해행위에 대해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관리되는 중소기업기술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사용 또는 공개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도급거래공정화에관한법률(하도급법)은 기술자료를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제조·수리·시공 또는 용역수행 방법에 관한 자료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료라고 정의한다.

법원 판례에서 합리적인 노력이라는 뜻은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해선 기업이 일정 요건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반면 부정경쟁방지법에서 합리적 노력 문구를 삭제하고 비밀로 관리된 문구를 추가한 건 영업비밀이 되기 위해 기업이 노력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 더 많은 기업, 특히 중소기업 정보를 영업비밀로 인정하기 위한 취지다.

중소기업 법률지원 재단 경청 이민주 변호사는 “부정경쟁방지법이 가장 먼저 생긴 일반법이고 나머지는 보다 중소기업과 밀접한 세부적인 법이다. 하지만 오히려 일반법인 부정경쟁방지법이 기업의 영업비밀을 가장 넓게 보호하는 건 이해가 어렵다”며 “중소기업 영업비밀을 두고 3개 법이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어느 법을 적용해 소송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애매하고 헛갈리는 상황이 있다”고 말했다.

■중기부, 개정안 발의 검토중
중기기술보호법 소관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 내용을 반영한 중기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지 않았다. 하도급법 소관부처 공정래위원회 역시 하도급법 개정안 정부입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10일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행위 심사지침’을 발표했지만 과거 부정경쟁지법이 엄격하게 두던 요건 조항을 그대로 따왔다.

전문가들은 두 법 모두 개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영업비밀을 더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인데다 서로 다른 법 정의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법무법인 율촌 임형주 변호사는 “법은 일관되게 해석해야 하는데 부정경쟁방지법과 달리 나머지 법이 중소기업 기술보호 가치를 더 제한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나머지 두 법이 부정경쟁방지법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기부는 중기기술보호법의 비밀관리성 요건을 완화해 ‘비밀로 관리된’으로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하도급법과 부정경쟁방지법 취지가 달라 차이가 있다”면서도 “국회 여야 간 내전으로 현재 개정안을 내놓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부처 간 법적 영업비밀의 정의를 다르게 두는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미 중기부, 공정위, 대검찰청, 경찰청, 특허청이 포함된 생생조정위원회가 출범해 있지만 규제 당국 간 실질적인 협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석근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중소기업 기술 보호 필요성에 모두 공감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다보니 너무 다양한 법률에서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법률의 문언과 내용이 통일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다양한 규제기관 권한이 중소기업 보호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작동되는 컨트롤 타워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