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서 피 토하며 구조 요청한 아내, 함께 있던 남편은..

      2020.01.24 09:01   수정 : 2020.01.24 11:03기사원문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119에 연락하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홍모씨(40)는 2018년 8월6일 밤 11시쯤 인천 미추홀구 소재 자신의 집에서 배우자인 피해자 A씨(43)가 약 15회에 걸쳐 피를 토하는 것을 목격했다.

A씨는 2013년부터 간경화와 식도정맥류 질환으로 정기적인 치료를 받아오던 터였다.

그는 평소 술을 자주 마시기도 했다.

A씨는 남편에게 119에 신고해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홍씨는 119나 경찰, 가족에게 연락하는 등 생존에 필요한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
방치된 A씨는 다음날 새벽 숨졌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검찰은 홍씨에게 유기치사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홍씨 측은 "지적장애에 해당할 정도로 지능지수가 낮아 판단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이로 인해 119에 연락하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수중에 돈이 없어 연락하지 못했을 뿐"이라며 유기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홍씨 측은 또 "간경변증 환자에게 식도정맥류 파열이 발생한 경우 사망률이 15~20%에 이른다"며 홍씨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도 피해자가 사망했을 수 있으므로 홍씨의 행위와 A씨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법원은 홍씨 측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을 맡은 인천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송현경)는 "홍씨는 피해자가 계속해서 많은 양의 피를 토해 위험한 상태인 것을 알고 있었고, 피해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는데도 그를 방치해 유기했다"고 판단했다.

사건 당일 홍씨는 A씨가 많은 양의 피를 토하고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봤다. 홍씨는 피해자에게 인공호흡을 실시했고 배에 귀를 대보거나 눈으로 보면서 사망 여부를 여러 차례 확인했다.

이러한 행동은 A씨가 위험한 상태였음을 홍씨가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정신감정 결과에 따르면 홍씨의 지능지수는 57로 '경도의 지적장애' 수준에 해당했다. 다만 현실에 기초한 이성적·논리적 사고에 이상이 없어 지적장애가 아닌 '경계선 수준의 지적기능'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식도정맥류 파열과 관련한 '사망률'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다. 사망률이 20%에 달한다는 건, 지혈 등 적절한 조치가 있었다면 사망하지 않은 확률이 80%에 이른다는 말이라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심신미약 주장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조사 과정에서 홍씨는 119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금전적 부담 외에 병실 간이침대의 불편함을 언급했다. 특히 '피해자가 살아나면 술만 먹으면서 자신을 괴롭힐 것 같아 사실 죽길 바랐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1심에서 홍씨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홍씨의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는 징역 3~30년인데 최하한인 징역 3년이 선고됐다.

홍씨는 사실오인,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검사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각각 항소해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갔다.

2심도 1심과 판단을 같이했지만, 양형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홍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차문호)는 "경제적 곤궁함이 그릇된 판단을 하는 데 영향을 줬고 낮은 지능 수준이 범행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홍씨가 부조의무를 다했다고 해도 A씨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고 A씨의 지속적인 음주 습관이 사망에 어느정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A씨의 부모가 2심에 이르러 홍씨와 합의해 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한 것이 양형에 주요하게 참작됐다.

재판부는 "석방되면 바로 아내의 무덤으로 찾아가서 용서를 빌라"고 당부했다.
홍씨 측과 검찰이 모두 상고를 포기해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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